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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Apr 01. 2024

남편과 계속 사는 이유(5)

무엇이 중한가

 엊저녁에 남편과 막내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사실 계속 힘들긴 했다.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느라,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가느라 3월 말이 되어가니 한숨 소리가 계속해서 나왔다. 


 약을 먹지 않고 버티는 것이 쉽지 않다. 약을 먹으면 분명 불안이나 우울이 적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머리 회전이 느려지고 생각의 흐름이 뚝뚝 끊어져서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약을 먹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가 건강도 해치는 건 아닌지 걱정은 되지만, 막상 눈에 보이지 않는 건강보다는 눈앞에 닥친 업무를 잘 해결해 내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어젯밤에 남편은 내 가시 돋친 말에 상처를 받았을 거다. 아침에 미안하다고 말은 했지만, 그게 얼마나 와닿겠나. 예고 없이 나는 화를 냈고, 내 독설에 남편은 많이 아팠을 거다. 어제 바로 미안하다고 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남편은 밤새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었겠다. 


 그렇다. 나도 화를 낼 때가 있다. 나름 독설가다. MBTI는 T라 이성적이고 냉정한 편이고, 사주로는 금이 여러 개 있어 날카롭고 예민하다. 그러니 말 한마디로도 얼마든지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거다. 남편은 감정형이고 따뜻하고 여린 사람이다. 물론 화낼 때는 이성을 잃어 보이긴 하지만, 평소에는 나보다 훨씬 부드럽다. 그렇게 본다면, 나는 말 한마디로 남편의 마음을 후벼 파고, 남편은 나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해 화를 내는 것은 아닐까. 웬만해선 나를 건드리기 어려우니까?  


 지금 내가 두려운 건 나의 어제 행동을 빌미 삼아 남편도 화를 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어쩌면 남편이 화를 낼까 봐 불안해하는 내 마음이 오히려 남편의 화를 부추기는 것이 되어 왔는지도 모른다. 덩굴처럼 서로 얽혀 있는 마음들이 악순환이 되어 결국에는 싸움을 일으키고 상처를 만든다. 


 매번 인정하는 게 기분 좋지 않지만, 매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만이 문제가 아니라 나도 문제이다. 그의 분노가 어린 시절 상처로 인한 것이라 해도 그걸 사랑으로 보듬어줄 수 있는 역할을 내가 할 수도 있다. 나의 부족함을 그가 보듬어줄 수도 있겠지만, 아직 거기까지 바라는 건 무리인 듯하다. 하지만 매일의 일상을 함께해 주고 가정을 지켜주고 가장의 자리에 있어주는 그가 있어서 내가 지금처럼 잘 살고 있기 때문에 이미 그는 충분하게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애들에게만 아니라 나에게도 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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