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향기 Apr 01. 2024

기다림의 힘

시간이 걸린다

 오늘은 오늘이다. 오늘은 지지부진할 것 같아서 불안한 내일도 아니고, 짜증스러웠던 어제도 아니다. 


 시댁에 다녀오는 길은 마음이 복잡하다.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오니 피곤하기도 하고, 시댁 식구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다. 운전하는 남편의 심기를 혹시나 건드릴지 모르니 화제를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자기 가족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들어서 기분 좋을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느낀 감정을 좀 더 나은 방식으로 표현은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나도 쌓여서 안 좋은 방식으로 또 다른 갈등을 일으킬지 모르니까 말이다. 


 시아버지 생신을 맞아 시댁에 갔더니 너무 반가워하신다. 역시 아이들을 앞세워 들어가야 한다. 숨김없이 반가움을 마음껏 표현하신다. 하지만 약간은 불편한 며느리가 들어오면 두 분 다 표정을 정제하고 나를 맞으신다. 이런,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요즘 남편이 일을 쉬고 있으니 내 얼굴 보기가 편치가 않으신 듯하다. 나는 괜찮은데, 부모 마음은 또 다를 거다. 


 남편은 가장 역할을 하느라 오랫동안 스트레스와 싸워가며 억지로 일을 해 왔었고, 그렇게 바랐던 가정 주부의 생활을 지금 누리고 있으나, 그것도 마냥 즐겁지는 않은 모양이다. 주식도 잘 안 되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다고 한다. 당연한 거지만. 


 그래도 쉴 땐 쉬어야 한다.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모른다. 몸 건강하고, 밥 잘 먹을 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자기 여유 시간을 누리고. 이 시간들이 남편에게 귀하고 소중하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남은 생을 또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었으면 좋겠고, 고난 중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최근에 남편은 응답하라 1988 드라마에 심취해 있다. 차를 타고 가는데 나에게 그 드라마의 OST를 틀어달란다. 그래서 틀어주었더니, 분위기가 너무 쓸쓸한 거다. 노래는 다 좋은데, 옛 생각이 나니 괜히 쓸쓸해지는 느낌을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노인이 되면 우울증이 많아지는 걸까. 나이가 많아질수록 내가 맡은 일은 줄어들고 옛날 생각이 많이 나니까 말이다. '세월이 가면' 노래가 압권이었다. 쓸쓸함을 불러오는 정도가.


 이것도 저것도 시간이 걸린다. 모든 과정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시간을 주고 언제까지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될 거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봤던 어느 강사의 말처럼, 나는 우리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살아갈 것을 믿고, 시련이 찾아와도 이겨낼 힘이 있다고 믿으며, 자기 인생을 의미 있고 즐겁게 살아낼 거라고 믿는다. 남편도 그렇게 믿고, 나 자신도 믿고 그렇게 살아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남편과 계속 사는 이유(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