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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Apr 04. 2024

일상이 고통이라도

어디엔가 행복은 있다

  전능감이 문제다. 내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 느낌. 


 그래서 충동적으로 도전을 하게 된다.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잘해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큰 거다. 그런데 매번 잘하는 건 아니다.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고, 거의 끝에 가서 시들시들해지는 경우도 있다. 겨우 일을 끝내도 성과가 그리 좋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러면 화가 난다. 불만스럽다. 내가 전능하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는데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포기는 빠르다. 빠르게 지난 일은 덮고 다시 새로운 일에 착수한다. 그리고 매달린다. 그러나 이번에도 뒷심이 모자라다. 


 작년에는 뉴질랜드에서 1년 살기의 꿈에 부풀었었다. 열심히 돈 모아서 온 가족이 뉴질랜드에 가서 살아봐야지 생각만 해도 신이 났었다. 정보를 수집해 보면 좋은 얘기보다는 안 좋은 얘기가 더 많았지만, 그래도 나는 설렜었다. 자유로운 서구 문화권에 가면 남편의 가부장적인 면과 굳어진 사고가 좀 유연해지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있었다. 아이들도 새로운 경험을 하고 영어도 배우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엄마들의 바람이지 않을까. 


 그런데 나의 이 목표가 안 그래도 힘든 남편을 더 괴롭힐 수 있다는 생각에 미쳤을 때, 스르르 바람이 꺼져 버렸다. 기대도 가라앉았고 욕심도 내려놓게 되었다. 더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나에게 소중한 건 더 나은 미래보다도 현재 평온한 일상이다. 매일을 불행한 일상 속에 살면서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는 게 바보짓 같았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인데. 


 남편만 생각하면 많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다. 가장 두려운 것 앞에서는 다른 모든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훈련받고 단련되었다. 철 없이 살던 내가,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시집와서 아무 생각 없이 네 아이를 낳고 (참고로 나는 MBTI가... P다) 나름 고생하면서 눈치도 생기고, 남을 배려하는 것도 배우고, 참을성도 생겼다. 지금의 나는 결혼 전의 나와는 전혀 다르다. 아예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에 무척 감사한다. 이 사람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게 사랑인가 가끔 의심스럽지만 사랑도 받았고, 억지로 사랑을 주어야만 했고, 그러다 보니 사랑 비슷한 마음도 자꾸 커진다. 동물도 아기도 이쁜 줄 몰랐던 내가 아기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동물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알아가는 이 시간이 감사하다. 


 감정에도 무딘 내가 다채로운 고통의 상황을 겪으면서 감각이 깨어나고 이제는 다채로운 기쁨과 행복의 감정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고통은 어쩌면 신의 선물이 아닐까. 고통 뒤에 이런 좋은 게 있다고 미리 알려주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고통 뒤에는 항상 좋은 게 찾아왔다. 바보 같은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그 고통이 사라지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서 그렇다. 


 힘든 시험을 치고 나면 해방감을 느끼듯이, 일련의 고통스러운 사건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면 또 새로운 삶의 한 장면이 열린다. 


 그냥 그 과정과 단계를 지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행복해지고 있다. 사랑스러운 딸아이가 분노와 짜증만 내비쳐도 시간이 지나니까 한 번씩 미소를 보여준다. 깔깔깔 웃기도 한다. 내 앞에서. 그러면 또 얼마나 행복이 몰려오는지. 이렇다 표는 안 내고 참지만, 마음은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 힘든 시간을 보내고 너는 이렇게 좋아졌구나. 많이 회복되었구나. 감사하다. 


 또 어려움이 닥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이 벌어질 거다. 내가 두려워했던 일들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무엇도 알 수는 없고, 미리 고민하지 않으련다. 훌훌 털고 잠시 현재 주어진 내 삶에 감사기도를 드리자.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내가 앉아 있는 작은 의자에 감사하고, 글을 적을 수 있는 컴퓨터가 내 앞에 있음에 감사하자. 


 오늘 아침 나도 모르게 고양이를 보면서 미소 짓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새 나도 고양이가 귀엽나 보다. 우리 식구 중에서는 내가 제일 마지막인 듯하다. 고양이들이 진정한 내 가족이 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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