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위의 문해력
TV를 잘 보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이 "너 어제 그거 봤어?" 하며 앞다투어 화제에 올리는 요즘 한창 '핫'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들을 잘 모른다. 꽤 오랜 세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잠도 덜 깬 채 어슬렁거리며 거실로 나와 TV 리모컨부터 집어 들던 사람으로서는 대단히 극적인 변화다.
한동안 중독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TV를 끼고 살았더랬다. 앉아서 보기라도 했나 뭐. 틈만 나면 모로 길게 누워서는 "참, 볼 게 없네" 하고 투덜대며, 평소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함박스테이크가 '3만 9천9백 원'이라는 자막 아래 자글자글 익어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철 지난 시트콤이 종일 재방송되는 채널을 지나, 배우와 입도 채 맞추지 않은 더빙이 당당하게 나오는 중국 드라마 채널을 거쳐, 누군지도 모르는 외국 선수들이 나와 무슨무슨 투어를 하는 골프 채널까지, 몇 바퀴를 하염없이 돌고 돌다 보면 가끔 '무한도전' 재방송을 만나 낄낄거리는 횡재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보낸 시간들이 뭐, 무지하게 소중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극내향형 인간인 나로서는 학교든 회사든 ‘집 밖의 삶’이 늘 고단했고, 집에서 만큼은 손끝을 까딱이는 것 외에 그 어떤 수고도 더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고작 이게 하루의 전부라면 뭔가 억울하긴 한데, 그렇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활동적인 무언가를 할 엄두도, 현대의 젊은이라면 으레 해야 한다는 '자기 계발'에 몰두할 기운도 나지 않았다. 집에 오면 그저 풀썩 소파에 누운 채 '저를 여기 아닌 어딘가로 순식간에 인도하여 주시옵소서'하는 마음으로 TV를 틀었고, 언제나 여전히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이랬던 내가 지금은 그 재밌다는 '오징어 게임'도, '하트 시그널'도, '폭싹 속았수다'도 안 본 채 살고 있다. (음, 그래도 유튜브에 깨알같이 뜨는 쇼츠들 덕분에 얼추 스토리는 아는 것 같기도?) TV 입장에서 보자면 어리둥절할만치 급작스레 사이가 멀어진 셈인데, 이 냉랭한 변화에 무언가 거창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좀 민망해서였다. 우리 집 어린이 보기가 말이다. 아무렇게나 널어놓은 빨래처럼 TV 앞에 대충 늘어져있다가 마지못해 몸을 일으키는 'TV 죽순이'의 실체를, 내 아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나의 세상에 등장해, 나를 바라보며 세상을 배우는 이 작은 사람 앞에서는 왠지 좀 멋지고, 지적인 어른인 척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 집 소파 위에 책이 놓였다.
그래, 나도 어렸을 땐 책 좀 봤었지. 그땐 무협지도, 오컬트 소설도, 하이틴 로맨스도, 순정 만화도, 대하소설도, 에세이도, 자습 시간에 몰래 보느라 뭐든지 세상 재밌었다. 대학 입시가 끝나고 감시의 눈길이 사라지자 독서에 대한 열망까지 허망하게 증발하고 말았지만. 그렇게, 책과 데면데면하게 지낸 세월이 참 길었다. 누군가 "요즘 무슨 책 보세요?"하고 물으면, 멋쩍게 웃으며 대충 눙치고 넘긴 그런 세월이.
소파에 앉아 어색하게 첫 장을 넘겨 본다. 옛정도 있으니 금세 다시 친해질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그런데 이게 웬걸? 자꾸 같은 줄만 되풀이하고 있다. 요즘 인기라는 베스트셀러들도 마찬가지였다. 글자만 건성으로 읽어나갈 뿐, 작가가 전하려는 말이 소화되지 않으니 그저 같은 페이지를 맴돌 뿐이었다. 이... 이것이 바로 박살 난 문해력?! 책, 너 너무 낯설다. 책 읽는 모습은 보여주고 싶고, 진짜 읽히지는 않고. 결국 커다란 책을 펼쳐 들고는 그 사이에 휴대폰을 숨겨, 아이 몰래 최신 연예 뉴스를 클릭하는 결말을 맞고 말았다. '책 보는 척'이라니. 슬프도다. 게다가 연기도 하루 이틀이지. 아이가 곁에 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일은 또 얼마나 심장에 해롭던지! 역시, 시늉은 진짜보다 어렵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내가 '정말로' 읽을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건, 바로 집 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아이의 그림책들이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컸으면 하는 마음에, 온갖 오버액션을 곁들여 목이 터져라 구연동화를 하던 시절이었다.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또, 또!" 하면 반가운 한편, 또다시 "또!" 할까 봐 조마조마하던 날들이었다. 그렇게 한껏 목청 높여 읽던 알록달록한 그림책들을, 그날은 처음으로 나를 위해 펼쳤다. 수박 수영장도, 색색의 알사탕도, 때 미는 물고기도, 코끼리보다 큰 사과도, 개구리 절친 두꺼비도, 강아지 메리도, 달님도 나오는 그 고운 책들을.
그렇게, 책이 다시 내 곁으로 왔다.
아이에게 너무 잉여인간으로 보일까 봐, 조금은 더 멋진 엄마로 보이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다. 삶에 교양을 더하고 싶다거나,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겠다거나 하는 목표도 없이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랫동안 용감한 척했지만 정말로 용감하게 살지는 못했고,
참말이지 쿨해 보이고 싶었지만 실제로 쿨한 사람은 되지 못했는데,
그렇게 열심히 '척'하다가 진짜로 다시 '책' 읽는 사람은 되었다.
나의 어린이, 네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