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누군가에게는 마음이 먹먹해지도록 그립고 애틋한 사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도록 미운 사람. 안타깝게도 아주 오랫동안 나에게 엄마는 후자였다.
엄마에 대한 내 마음은 고마움과 안쓰러움, 연민과 분노, 책임감과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온통 뒤범벅되어 있어 시시각각 변하는 괴물과도 같았다. 좋은 말로 포장해 보자면 평화주의자,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갈등회피주의자인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화를 내는 일이 참 드문데 세상에서 단 한 사람, 나의 엄마에게만은 너무도 쉽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 엄마가 툭 하고 내뱉은 말 한마디, 무심히 한 행동 하나에도 정신 차릴 수 없이 분노 게이지가 치솟아 이상할 만큼 벌컥 성을 내고 나면 내가 무슨 미친 짓을 한 건가싶어 한동안 우울했다.
두해 전,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오십 년을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아'낸' 아빠를 떠나보내고 난 후, 엄마는 갑자기 혼자가 되었다. '극도로 미운 사람을 견디는 정신노동'이 사라지고 나니 엄마에게는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와 함께 너무도 많은 '혼자만의 시간'이 남았다. 그 시간은 주로 과거로 돌아가 오래 머물렀다가 한 번씩 미래로 내달렸는데 이때마다 엄마의 마음은 때로평화와 안정으로,종종 후회와 원망으로, 자주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요동쳤다.
평생 안고 살아온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에다 팔십에 접어들면서 부쩍 두드러진 노화, 몇 년 사이 계속해서 진행된 시각 장애까지 겹쳐 사실 엄마는 모든 영역에서 전보다 기능이 쇠퇴하는 것이 당연한 삶을 살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엄마는 오랜 세월 인생의 탈출구이자 버팀목이었던 그림을 더 이상 그릴 수 없게 되었고, 그렇게 좋아하던 책도 읽을 수 없게 되었으며, 그토록 사랑하던 딸은 몸도 맘도 엄마의 품을 떠난 지 이미 오래된 채였다. 반백 년 동안 살고 있는 동네와 집이니 엄마는 익숙한 지리와 몸에 익은 감각, 얼마간 남은 시력으로 집안 살림을 하고, 아프지 않은 곳이 별로 남지 않은 몸 여기저기를 치료하러 이런저런 병원들을 다니면서 하루를 꾸렸다. 그렇게 지친 몸을 이부자리에 누이고 나면 엄마는 또다시, 수없이 떠도는 생각들과 함께 오래된 집에 덩그러니 남은 노인이 되었다.
이렇게 애처로운 엄마를 자꾸만 미워하는 마음은 언제나 지독한 죄책감을 달고 나타났다. 아빠에 대한 추억은 글 한편에 소담히 담겼지만 엄마에 대한 글은 늘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으며, 그마저도 애써 발행했다 얼마 후 취소해 버렸다. 엄마에 대한 내 감정이 지저분하게 엉겨 붙은 찰떡, 휘저어 놓은 흙탕물인데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올 리 없었다. 엄마를 미워하는 일은 나의 근원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일이자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고통이었다. 그러지 않으려 몸부림쳐봐도 잘 되지 않는 일,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일. 그러던 어느 날 덜컥, 겁이 났다. 이렇게 엄마를 미워만 하다가 영영 이별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엄마를 보내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후회와 자책, 원망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우면 어떻게 하지? 그리워하지는 못할 망정 떠난 엄마를 떠올릴 때마다 피해의식과 분노가 따라오는 인생이라니,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나에게 엄마를 미워하지 않는 일이란 문득 걸려 온 전화에 '응, 엄마~'하고 별스럽지 않게 대답하는 일, 곰팡이 핀 음식이 상 위에 올라있어도 슬쩍 치우고 마는 일, 제대로 깎지 못해 엉성한 발톱을 얌전하게 다듬어 드리는 일, 간단한 조작 버튼을 바르게 누르지 못해 이게 갑자기 안된다고 대뜸 화를 내실 때 찬찬히알려드리는 일, 이런저런 걱정과 흥분에 흠뻑 빠져 내게 손을 뻗을때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같이 비명 지르지 않는 일, 바라건대 엄마 손을 잡고 쑥 건져 올려 툭툭 털어드리고는 '이거 별 일 아니야~ 괜찮아.'하고 말해주는 일, 나의 아이에게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보냈을 담담한 응원의 눈길을 가끔은 나의 엄마에게도 보내는 일, 이 모든 것들을 이를 악물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해내는 것이 아니라 고요하고 잔잔한 마음으로 '그냥' 하는 일.
나의 상담 선생님은 어쩜 엄마에게는 기회가 없었을 거라고 했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엄마가 한 말과 행동들이 나에게 어떠한 괴로움을 주고 있는지 아셨다면 엄마는 딸에게 '그렇게' 굴지 않으셨을 거라고, 엄마는 잘 모르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제 나에겐 엄마에게 내 맘을 전할 힘이 있고, 엄마에겐 바뀌고 성장할 힘이 있다고도 했다. 믿고 싶기도 하고 실은 믿을 수 없을 것 같기도 한 그 말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나에게 성큼 다가왔다.
지난여름, 아이가 급작스러운 수술을 받게 되고 온 집안이 초비상이 된 일이 있었다. 아이에게, 양가 어른들에게,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태연한 척, 뭐 좀 아는 척, 괜찮은 척하려 노력했지만 내 긴장과 불안은 사실 잘 숨겨지지 않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다른 가족들이 병실에 들어올 수도 없고 누군가와 면회도 쉽지 않았던 그 기간 동안, 엄마는 전화를 통해 소식을 전하는 내 목소리로 나의 극심한 공포와 고통을 감지하였던가 보다. '혹여나 딸을 잃을까 염려하고 애태우는 엄마'가 된 '내 딸'을 엄마는 참으로 가엾어했다. 그때부터 엄마는 무엇이든 혼자 해보려 애를 쓰셨다. 먹통이 된 전자 도어록의 약을 혼자 갈아보려 노력하고, 냉기가 돌지 않는 김치 냉장고의 A/S를 혼자 해결해 보려 무더운 여름 이만 오천보를 걸어 매장에 찾아가 보았으며, 방문할 시기가 한참 지난 병원 예약을 스스로 바로잡아보려 노력했고, 오늘은 어디가 어떻게 아팠는지 딸에게 일일이 전하지 않았다.
더 이상 당신의 행복과 안녕을 딸에게 의탁하지 않으려 결심한 엄마의 변화를 나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엄마가 드디어 나를 '사랑하는 나의 일부이자 내 안식을 책임져야 할 자식'이 아니라 '열심히 제 삶을 꾸려가는 독립된 인간'으로 분리해 내었다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꼈다. 이처럼 놀라운 변화의 원동력을 상담 선생님은 '나에 대한 엄마의 지극한 사랑'으로 해석해 주었다. 내가 내 아이의 위기에서 겪었을 괴로움을 엄마는 나에 대한 마음에 견주어 느꼈을 것이라고, 자식의 아픔을 마주하는 나의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엄마는 나에 대한 사랑의 크기에서 짐작했을 것이라고. 그러므로 이토록 고생하는 딸에게 엄마는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엄마가 나를 놓아준 것을 직감하자, 나는 드디어 울렁이는 배에서 내려 단단한 땅을 딛고 선 것 같았다. 엄마의 혀 끝과 손 끝에 칼날이 달린 실이 묶여 있어 나를 자꾸 찌르는 것만 같았는데 어느새 보니 실은 끊어진 지 오래였다. 어쩜 그런 칼 따윈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휴우... 하고 한숨을 돌리고 나니 그제야 '나를 해칠 힘도, 맘도 없는' 작은 노인 하나가 보인다. 마침내 스스로가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이제야 엄마에게 한 발 다가설 용기를 얻는다. 자신의 짐들을 혼자서 짊어지고 걸어 보려는 노인의 기우뚱한 어깨를 받치고, 슬그머니 짐 하나를 빼앗아 손에 들어본다. 그토록 오래 바랐던 대로, 미워하지도별스럽지도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