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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네 Sep 06. 2024

엄마와 헤어지는 중입니다

내 육신의 창조자이자 내 영혼의 파괴자

    '내 육신의 창조자이자 내 영혼의 파괴자'라는 무시무시한 말로 시작한 글이 있었습니다. 화면을 열었다 닫았다, 글을 썼다 지웠다를 수개월 해가며 가까스로 빚어내어 놓고는 얼마 못 가 발행을 취소해 버린, 브런치에서는 '사라진' 글입니다. 죄책감과 원망이 뒤섞여 엉망인 마음을, 퍽이나 담담하고 무심해진 척하며 드러내어 놓는 일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깜짝 놀라 얼른 서랍에 도로 쑤셔 넣고는 꼭꼭 닫아걸어 두었지요. 거기 있는 줄 뻔히 알고 있지만 모른 체하면서 말입니다.

    지난 글(엄마)에 밝힌 예기치 못한 상황들의 역동 끝에, 이제는 애써 헤어지지도 달아나지도 않고 엄마 곁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친김에 그때 그 서랍을 빼꼼히 열고는 내 마음을 온통 가시같이 찔러대던 이 글을 다시 꺼내어 읽어 봅니다.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걸 보면, 나는 이제 엄마가 밉지 않은가 봐요. 엄마를 미워하느라 그리고 그렇게 엄마를 미워하는 나를 미워하느라 아주 오래 방황했는데 이제, 드디어, 나는, 자유입니다. 묵은 상처와 함께 숨겨버렸던 나의 글을 다시 여기에 살짝 놓고 갑니다. (이전 글인 '엄마'보다 전에 작성한 글임을 다시 한번 밝혀둡니다.)




    오랫동안 전화를 두려워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는 것을 두려워했고, 발신자 표시에 '엄마'라는 글자가 뜨는 것을 두려워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마 나는 '전화를 통해 자꾸만 내게 닿는 엄마'가 두려웠던 것 같다.


    유년 시절, 엄마는 나에게 무서우면서도 안쓰러운 사람이었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사람,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어린 눈으로 보아도 딱히 나 말고는 마음 둘 곳 없어 보이는 팍팍하고 고단한 삶이었다. 엄마에 대한 이 '갸륵한 사랑'의 문제는 상대방의 상태와 욕구를 기민하게 살피고 반응하는 자가 고작 어린이였다는 점이다. 성인의 행복을 어린아이가 책임지고 있는 듯한 이 불균형한 관계 속에서 나는 일찌감치 '철든 아이'의 가면을 쓰고 되지도 않는 구원자 흉내를 내며 살았다. 꽤 오랫동안 이게 별난 것인 줄 몰랐고, 잘못된 것인 줄은 더더욱 몰랐으며, 심지어 내가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원치 않는 사람과, 이제 와서 무를 수는 없어서 결혼했다는 엄마는 (아빠가 운명하시던 무렵 뜨거운 화해의 기간을 제한다면) 평생 아빠를 사랑하지 못했다. '맏이는 맏이라서, 아들은 아들이라서, 막내는 막내라서 사랑받는데 하필이면 가운뎃 자식으로 태어나 제대로 된 관심 한번 받지 못하고 자란 것'이 늘 한이었던 엄마는 남편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으로 만나 지겹도록 싸우며 사셨고 어떻게 해도 채워지지 않는 뿌리 깊은 결핍에 아파하셨다. 그 와중에 엄마의 인생에 등장한 어린 생명은 마침내 얻은 '사랑' 그 자체였다.


    누군가의 자부심, 행복, 기쁨, 위로자, 살아가는 이유. 이 모든 기대와 책임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몽땅 부여받은 아이는 오래도록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쓸모가 있다는 것,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무척이나 멋지고 뿌듯한 일이었으므로. 하지만 '엄마를 불행에서 건져내는 일'은 비슷한 전개가 지겹도록 반복되는 초연재만화처럼 도무지 끝이 나지 않았다. 격렬한 다툼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만 지치고 무서워 이제 '엄마를 그렇게 괴롭히는 관계'에서 벗어나라고 하면 나 때문에, 나를 지키기 위해 그럴 수 없다고 하셨다. 억울했고, 미안했다. 그다지 고마웠던 것 같지는 않다.


    성인이 되고 원가정에서 떨어져 나와 나만의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장성하여 독립한 딸'에 대한 엄마의 마음은 뿌듯했다 불안했다 하며 마구 요동쳤다. 어느 날은 "네가 잘 사니 좋다."라고 했다가 또 어느 날은 "네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것 같다."며 깊은 상실감을 토로했다. 이 살던 딸이 더 이상 매일 당신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전화에 집착을 하셨는데, 아무 때고 불쑥 전화를 해서는 바로 연락이 닿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셨다. 나중에야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연락을 해보면 왜 이리 전화를 안 받느냐고(부재중 표시가 단 한 번 찍혀있을 때에도), 갑자기 무슨 큰 사고나 병이 났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아느냐며 소리소리 지르셨다. 특별한 용건이나 전조도 없이 순식간에 들이닥쳐 고요했던 나의 하루를 박살 내는, 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그 폭발적이고 돌연한 분노 앞에서 난 그저 멍해질 뿐이었다. 매일 전화로 엄마의 기분과 안부를 묻지 않는 딸은 '엄마가 갑자기 죽더라도 며칠이고 모르고 있다가 경찰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를 들어야 했고, 부족하고 냉정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엄마는 내가 원하지 않는 반찬을 정성껏 마련해 내가 원하지 않는 때에 방문했고, 렇게 다녀간 다음날이면 반드시 '너네 집에 갔다 온 것이 무리가 되었는지 몸이 아파 종일 누워있다'는 말로 내 속을 잔뜩 헤집어놓았다. 가슴을 잔뜩 졸인 채 엄마에 대한 이런저런 부담스럽고 불편한 마음을 내밀어 보이면 한참 동안 '화가 나고 기가 막혀 며칠이나 잠을 못 주무셨는지', '충격이 커서 무슨 병원 정신과에 예약을 잡으려고 했더니 얼마나 기다리라고 했는지' 등등의 정보와 함께 '엄마를 거부하는 괘씸한 딸'에 대한 처절한 응징이 돌아왔다. 대로 딸이 아득히 날아가 버릴까 근심하며 엄마 나름의 뒤틀린 방도로 이런저런 최선 다 할수록, 딸은 '감당하기 힘든' 엄마에게 점점 더 겁을 먹고 움츠러들 뿐이었다. 결국 엄마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대로, 딸은 엄마의 인생에서 멀리 달음질쳐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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