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나'와의 작별

안녕, 또 만나지 말자

by 감자네

기억이 닿는 한, 난 늘 키가 컸다. 또래들 사이에서 언제나 한 뼘은 껑충했는데, 아무래도 그 옛날 팔척장신이었다는 외할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이 틀림없다. 여기에 먹성까지 참 대단했으니, 전날 저녁에 소쿠리 가득 쪄 둔 만두를 꼬맹이 혼자 밤새 들락거리며 싹 해치우질 않나, 점심시간마다 어마어마하게 큰 양철 도시락을 펼쳐 친구들을 놀라게 하질 않나, 여하튼 어린 시절의 나는 '먹어도 너무 먹어 댄' 일화를 많이도 남겼다. 이렇게 유전과 노력(?)의 기막힌 조화 덕에 성장기 내내 남부럽지 않게 자랐고, 클 만큼 다 큰 이후부터는 조금씩 옆으로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거, 뭐, 원래 성장에는 여러 방향이 있는 법이니까! 흠흠...)


이처럼 기골이 장대한 나를 보고 주위 사람들은 '넌 그냥 말없이 내려다만 봐도 세상만사 반쯤은 먹고 들어갈 것'이라는 축복(?)을 아끼지 않았으나, 사실 나는 누구보다도 쭈구리 같은 마음으로 살았다. 세상은 온통 버거운 일 투성이, 겁나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직장에서든 일상에서든, 사람이든 일이든

마주하는 사건 하나하나에 노심초사했고, 혹여 무언가 실수하지는 않았을지 전전긍긍했다. 마치 작디작은 균열이라도 생기면, 애써 지탱하고 있던 '나'가 속절없이 바스러지기라도 할 것처럼.


내 인생에 밀려오는 모든 미션들을 빈틈없이 클리어해야 한다는 강박.

언제나 최상의 퍼포먼스로 찬사와 환호를 받아야 한다는 교만.

어느 누구에게든 허점을 들켜서는 안 된다는 집착.

완벽하지 않으면 곧 실패라는 착각.


이렇게 '이만하면 괜찮다'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찌그러진 마음 때문에 근심과 자책은 일상이 되었고, 매사 타인의 반응을 살펴 과연 내가 완벽했었는지 읽어내느라 한껏 촉수를 뻗고는 미친 듯이 레이더를 돌려댔다.


문제는 이렇게 늘 바짝 곤두선 채 살다 보니, 극도로 불안하고 예민해진 자신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줄줄 새어나가 정작 중요한 순간엔 머릿속이 하얘지고 어이없는 실수만 늘어갔다는 점이다. 게다가 애초에 '완벽'이란 명확한 실체가 없는 것이므로, 헉헉 대며 신기루를 향해 내달리던 나는 결국 요상하게 삐걱거리다 와장창 엎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쓰러진 내게 남은 것은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두려움, 그리고 한없이 못난 자신을 탓하는 너덜너덜한 마음뿐이었다. 아주 오래도록 스스로를 속이면서까지 얻고 싶었던 '완벽'이라는 허상은 그렇게 산산이 부서졌고, 날 선 채 위태롭게 버티던 자존심은 박살이 났다.


"괜찮아, 너 이만하면 잘하고 있어."라는 주위의 말에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끝도 없이 동동거리기에 한동안 난 내가 퍽 겸손한 사람인 줄 알았다.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점을 뼛속 깊이 새기고 좀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발전적인 마음, 뭐 그런 건가 싶었다. 하지만 웬걸, 이거 완전한 착각이었다. 사실 난 무척이나 거대한 자의식에 가득 찬 사람, 그저 그런 '괜찮음' 따위로는 도무지 성에 차지 않는 지독히도 오만한 사람이었다. 내가 한 일, 내가 한 선택, 내가 듣는 평판,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중심이자 총합인 '나'는 결코 그럭저럭 괜찮아선 안되었다.

나는, 찬란해야 했다.

안쓰럽고 어이없게도.


거대한 풍선처럼 있는 힘껏 부풀어 오르다 빵! 하고 터져버린 '나'의 파편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주섬주섬 주워서는 도닥도닥 빚어본다. 이번엔 '적당히 멋지고 적당히 부족한 나'로. '적당히 야무지고 적당히 어수룩한 나'로. 좀 실수하거나 못날 때도 이만하면 장한, '별것 아닌 나'로. 함께 지낸 세월이 워낙 오래되다 보니 여전히 '완벽하고 찬란한 나'의 환영이 종종 찾아오지만, 두 손을 꼭 쥐고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이별을 고해 본다. 안녕, 너도 참 고생 많았다. 우리 또 만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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