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오해

거 참, 귀여운지고

by 감자네

사람은 본래 오해하며 살아간다. 세상을 바라보는 틀은 저마다 다르고, 같은 광경을 보아도 받아들이는 정보는 제각각이니까. 특히 어린이는 세상만사를 더욱 쉽게 오해하기 마련인데, 아직 데이터 부족으로 인하여 상황을 해석하기가 녹록지 않은 데다가 마음껏 구사할 수 있는 어휘 목록도 넉넉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벌어지는 작은 오해들은 생각할수록 피식거리게 하는 매력이 있는데, 가끔은 어이가 없어서, 또 가끔은 너무 귀여워서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1. 첫 번째 일화

어느 겨울밤, 자기 방에서 자던 아이가 잠결에 화장실을 다녀오더니 안방으로 들어와 내 품을 파고들었다. 설핏 잠에서 깨고 보니 입 안이 바싹 마른 게 느껴져, 물을 한잔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OO이 목 안 말라?" 가만히 생각하던 아이가 갑자기 나를 꽉 껴안으며 말했다. "응, 엄마의 사랑!" 음...? 나를 사랑해 주어 일단 고맙기는 한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 다시 물었다. "응~근데 OO이는 목 안 말라? 엄마는 물 마시러 가려고~" 잠깐의 정적 후 아이가 말했다. "아... 난 엄마가 나한테 '뭐가 말라?'라고 물어보는 줄 알았어." 아하! ‘목 안 말라?’ → ‘뭐가 말라?’ → ‘뭐가 필요해?’였구나! 치열한 해석 끝에 도출된 결론은, 엄마의 사랑을 외칠 타이밍이라는 것이었다. 귀여운 놈.


2. 두 번째 일화

성당에 다녀오던 길, 아이가 조금 풀이 죽은 채로 말했다. "엄마, 나도 사슴 저금통 갖고 싶은데... 우리는 왜 사슴 저금통 없어?" 뜬금없이 무슨 동물 저금통 얘긴가 어리둥절했더니만, 신부님이 미사 끝날 때 공지 사항 말씀하시면서 "지난번에 나눠드린 사슴 저금통은 다들 잘 갖고 가셨지요?"라고 하셨단다. 아... 그건 사슴 저금통도 아니고, 기린 저금통도 아니고, 하마 저금통도 아니고, 고양이 저금통도 아니라고 잔뜩 놀리고 싶었지만! 꾸우욱, 참았다. 아가, 그건 사순절 기간에 이웃에게 기부하려고 사용하는 '사순 저금통'이야.


3. 세 번째 일화

아이 외할머니네 동네에 놀러 갔다가 지역 관공서에 들른 어느 날이었다. 1층 로비 벽에는 지명수배 명단이 잔뜩 붙어있었는데, 그것들을 한참 동안 유심히 살펴보던 아이가 물었다. "엄마, 근데 우리나라에 왜 이렇게 말 씨가 많아?" 말 씨? 그동안 주위에서 말 씨 성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던 지라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래? 우리나라에는 김 씨, 이 씨, 박 씨가 제일 많다던데? 말 씨를 어디서 봤어?" 그러자 아이가 벽에 붙은 공고문을 가리키며 신나게 설명했다. "이것 봐봐~ 이 사람은 경상도 '말'씨고, 저 사람은 '전라도 '말'씨래! 여기도 '말'씨 또 있어!" 아아... 김해 김 씨, 진주 강 씨 같은 건 줄 알았구나. 근데 저거... 그거 아니야...어디 어디 말투라는 뜻이야...


4. 네 번째 일화

"엄마! 나 오늘 친구들한테 놀림받았어, 힝..."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신나게 이야기하던 아이가 갑자기 이런 소식을 전하던 날,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나 심각한 일은 아니길 바라며 담담한 척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아이가 하는 말. "어~ 친구들이 시진핑이 어쩌고 얘기하길래, 내가 ‘그건 무슨 핑이야?’ 하고 물었거든. 그랬더니 친구들이 엄청 어처구니없어했어." 요즘 반 친구들이 하도 하츄핑, 시러핑, 바라핑, 불안핑 하면서 자기가 잘 모르는 핑 얘기를 많이 하길래 시진핑도 새로 나온 티니핑 종류인 줄 알았단다. 으음... 우리 어린이, 곧 세계사핑 한번 만나야겠구나!


5. 다섯 번째 일화

아이와의 일들을 떠올리다 보니, 문득 남편과의 장면 하나가 덩달아 따라온다. 남편과 둘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동태찌개를 먹으러 간 날이었다. 자리를 안내받고 보니 아뿔싸! 단체 손님들이 잔뜩 차지한 홀의 구석자리였다. 덕분에 의도치 않게, 시끌벅적한 일행의 대화를 고스란히 청취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초스피드로 나온 찌개가 보글보글 끓어오를 즈음, 돌연 가게 문이 활짝 열리더니 새로운 인물이 씩씩하게 들어와 테이블마다 돌며 악수를 청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절대 일행이 아님을 온몸으로 어필하려 반쯤 돌아앉아 있는데, 우렁찬 말씀이 들려왔다. "늘 고생하시는 우리 임원님들! 올 한 해도 임원님들 덕분에 우리 구가..." 아하! 구청에서 '우리 동네 시민 임원' 같은 분들을 모시고 연간 활동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던가 보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우리 동네 시민 임원'은 아닌 우리는 적잖이 불편한 식사 자리였다. 돌아오는 길, 남편이 조용히 물었다. "근데... 남자분들도 많았는데 왜 자꾸 이모님이라고 부르지?" 이모님...? 아아... 신랑, 그거 아니야... 우리 집 어린이랑 어른이랑 둘이 다 이리 모여 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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