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보험

by 이백지

엄마는 아들에게 보험 하나쯤은 들어두라 말씀하셨다. 중학생 이후 만난적이 없어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사촌누나에게 보험을 들어주셨다. 교회 집사님 중에서도 보험 영업을 하시는 분들이 있었지만 엄마의 선택은 사회초년생 보험영업 담당 친척이었다. 20대의 난 겁이 없었다. 아프거나 다친다는 걸 상상하기 어려웠다. 보험은 걱정이 많은 이들이 걱정을 덜어내기 위해 지불하는 정치후원금처럼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계속 보험 가입을 미루던 차에 퇴근 후 집까지 찾아와 계약서에 싸인 서명을 받아가고 계약이 시작됐다.

보험 계약과 달리 나는 사회에 자리를 잡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달이 빠져나가는 보험료도 월급이 밀리면서 낼 수 없게 됐다. 나는 지금이라도 보험을 해지하자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자기가 보험료를 내줄테니 계속 납입하자고 하셨다. 난 가입한 보험이 소멸형 보험이라 만기까지 납입해도 보험료를 돌려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싱크대 볼에 그릇을 넣어두는데 뒤에서 엄마가 말했다.


"엄마가 미안해"


그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자식 걱정하는 마음에 시작된 일이었는데 대학까지 지원해준 아들은 변변한 직장에 자리잡지 못하고 보험료 낼 돈도 없었다. 아들은 첫 직장에서 임금체불을 겪었고, 회사는 공중분해 되었다. 경력이 있던 선배는 다른 회사로, 사장님 아들은 사장님과 함께 다른 사업체로, 나와 몇몇은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어 거리로 내몰리지는 않았다.


천만 원 가까이 납입한 보험은 200만 원 남짓 돌려받고 끝이 났다. 직장이 없는 내겐 큰 돈이었다. 미래를 준비하는 보험은 현재가 탄탄해야 쌓아올릴 수 있다. 나 역시 다니던 직장을 나와 집에서 쉬고 있을 무렵에서야 보험의 약관을 살펴보게된 것이다. 사촌 누나도 보험 영업 일을 그만두고 장사를 시작했다고 전해들었다. 사촌 둘이 술장사를 하지만 나는 술을 먹지 않는다.


술을 입에도 대지 않던 엄마는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엄마가 병원생활 하는 동안에도 보험때문에 애를 먹었다. 보험사에서 보험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었기 때문이다. 암보험에 가입했어도 어떤 암인지에 따라 보험금이 지급될 수도, 지급이 거절될 수도 있다. 누나들이 나서서 금융감독원에 부당함을 알렸고 보험사는 결국 보험금을 지급했다. 그 후 나는 보험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졌다.


그러나 아내는 나와 달리 보험을 종교만큼 신봉하는 편이다. 보험 혜택을 많이 받은 장모님 덕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 집은 연금저축보험까지 더해 매달 60만 원 이상을 보험료 납입에 할애하고 있다. 가정형편이 여유있을리 만무하다. 아내는 추후에 다 돌려받을 수 있는 혜택으로 여기고 있지만 나는 없는 돈이라 생각한다. 보험회사의 영업비용과 운영비로 충당되는 돈으로 여기고 그저 가장인 내가 없으면 아내나 가족들에게 중도 해지한 만큼은 위로가 될 수 있겠거니 생각한다. 매달 납입하는 보험료는 아내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줄여주는 금융치료 후원금쯤으로 여기고 있다.


엄마의 '보험료 자기가 내줄테니'의 말처럼 나는 내 이름으로 보험료를 납입하고 혜택은 내 가족들에게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가장인 나는 만기 때까지 보험료를 납입하면 가족들 품에 수고했다고 보장 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전에 소멸되어질까? 지금 추세로는 내 위치를 보장받긴 힘들어 보인다. 아무래도 남편인 위치와 아빠의 입장에서 가장인 아빠들은 소멸형 보험 상품에 가까운 모양새다.


자식이 부모의 보험이던 시절의 종말이 오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쑥쑥 큰다. 가끔은 그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천진난만하게 웃고 떠들고 현재를 즐기는 아이들과 달리 혹여 다치진 않을까 걱정하며 불안해 하는 내 모습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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