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와이파이

by 이백지

그녀의 배는 복어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나를 세상 밖으로 밀어냈다. 나는 세상이 두려웠고 사기꾼들의 입발린 말들의 덫이 무서웠다. 아마도 엄마는 이런 세상을 내가 겪게 되는 게 불안했을 것이다. 탯줄은 진작 끊어졌지만 무언가 이어진 느낌이 들었다. 엄마의 사랑은 거리조절에 실패한 와이파이처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신호를 감지할 수 있었다.

사람은 참으로 간사하다. 곁에 있는 대상은 만만하게 생각한다. 엄마가 그렇다. 가족들의 서포터인데, 양말의 위치와 냉장고 던전의 반찬 위치를 꿰고 있어도 덜 자란 아이와 남편에겐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엄마는 항상 내가 끼니를 챙겼는지 물으셨다. 마치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 제때 밥도 못 먹고 다닐 것이라 예상이라도 한듯 말이다. 엄마는 남편 밥은 안 챙겨도 자식들 끼니는 챙기셨다. 어릴 적 "안 돼"라고 말하던 엄마는 자신의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는지 아들에게 자꾸만 무언가를 선물해 주고 싶어했다.

남들이 보기엔 유행이 한참 지난 옷인데 그건 시장에서 엄마가 사준 옷이 아닌 마음에 드는 거 골라보라고 해서 아들이 직접 고른 옷이었다. 엄마의 사랑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 옷은 작아졌지만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직장에 다녀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바래왔을 것이다. 비록 그녀의 생전에 아들이 낳은 아들과 딸을 못 보게 되었지만 말이다.

엄마의 아랫배가 보였다. 쭈글쭈글 늘어져 있는 배는 축 처진 어깨처럼 방바닥에 닿아있었다.

'나는 저기서 나왔구나'

겁이 많은 태아는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호기심 많은 태아만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 딸의 배냇짓이 그러했다. 뱃속에서 아빠 팟캐스트 음성 파일만 듣던 아이는 아빠의 실물을 보고 '너가 그 정자 제공자였구나' 하고 웃어넘겼다. 가소로운 녀석!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아빠를 비웃었다. 아, 아 만만한 사람.

1~2살 아기들은 천사지만 3~4세 아이들은 악마처럼 행동한다. 이제 주방 서랍, 옷장들을 열어제낄 수 있는 능력치를 부여받아서인지 뭐든 다 자기 힘으로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아침에 전역을 명 받은 전역자처럼 말이다. 실상은 더 어린 아기들에게 관심을 빼앗긴 한 물 간 연예인처럼 콧대만 높을 뿐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엄마나 아빠는 위대한 존재일리 없다.

부모의 위대함은 막상 그들이 부모가 되었을때 알게 된다. 왜 엄마는 나에게 자존심 따위없이 미안하다고 사과했는지 그 말의 무게를 실감한다.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고 뒤돌아보니 나 역시 무뚝뚝한 아버지의 모습과 닮아있다. 엄마가 그토록 싫어했던 아빠의 차가운 모습을 아들이 따라한다. 아이들 이겨먹는다고 승점이 쌓여 우승할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직 아내에게 미안하단 말을 못했다. 아내는 한 달 전부터 '새해엔 역시 떡국이지' 생각하는 것처럼 남편에게 사과 한 마디 받고 2023년 서포팅을 시작하려 했는데 프로포즈처럼 미안하단 말도 남편에게 받지 못했다. 아, 아 얄미운 사람.

사랑이었던 감정은 쉽게 미움으로 바뀐다. 엄마의 미안함은 엄마의 최선이었다. 자기 배에서 태어난 생명에게 더 잘 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끝까지 너를 지원해주고 챙겨주지 못할 거 같아 그리도 미안하다 말씀하셨나 보다. 나 역시 내가 더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엄마는 지금 선산에 계신다. 이제 와이파이 신호도 잡히지 않는다. 봄이 오면 기일에 맞춰 사죄하러 가야겠다. 엄마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지 못했어요. 좋은 옷을 입어도 좋은 사람이 될 순 없나봐요. 아내에겐 늘 야속한 사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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