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부모는 미안한가?

by 이백지

퇴근 후 아이들을 안아주는 건 미안한 마음이 커서 그렇다.

미안한 마음의 근원은 내 삶에 대한 스펙트럼이다. 내 20~30대를 돌아보면 내 아이의 부를 가늠할 수 있다. 그 당시의 생각과 선택, 능력치 등에 의해 10년, 20년 후 아이의 유모차와 이웃들이 결정될 수 있다는 논리이다. 20대에 어학연수나 이민을 준비하다 한국에 다시 돌아오는 선택들, 젊을때 다단계나 종교에 빠져 출발이 늦은 경우, 결국 이러한 방황들이 자기 자신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주지 못할지언정 자녀의 삶에는 스노우볼이 되어 영향을 끼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내 삶의 총합이다. 내가 살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과 태도들이 DNA의 데이터에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어제의 나와 10년 전 내가 게으른 생활을 했다면 자식의 게으름을 윽박지를 수 없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끊임없이 삶의 모습들로 증명을 해야 하는 위치이다. 내가 되고싶었던 모습으로 아이를 키우려면 먼저 나부터가 그런 모습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내가 아이에게 하는 말들은 거울처럼 나에게 반사된다.

아이가 크면 어떤 기분이 들까? 가장인 나는 아이들이 클 때까지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신을 희생해 아이를 성장시킬 수 있을까? 사람은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다고 너무 앞서서 걱정할 필요 없다는 내 아버지의 말씀처럼 살아가면 좋으련만 늘 걱정과 불안이 앞서는 나다. 그렇다고 준비를 잘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쉴새없이 몸을 움직이면 머릿 속 걱정이 줄어든다. 물론 내 아내는 이해하지 못한다. 남편이 왜 저녁 9시 30분만 넘으면 군 복무 중인 병사처럼 잠이 들기를 희망하는지를 말이다. 불침번 근무자처럼 새벽에 깨어 냉장고를 뒤적거리는지 내 아내는 모른다. 점심시간에도 바쁘게 일을 해 오후 5시에 점심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틀과 나머지 하루는 편의점 햄버거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차에서 이동하며 먹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의 촉박함을 내 아이는 모른다.

그렇게 일을 해야 가장은 집에 생활비를 가져다 준다. 카드 연체 메세지는 음식배달 부업을 시작하고나서부터 더이상 받지 않고 있다. 식탁 밑에서 잠든 강아지들의 코 고는 소리도 지구 반대편 전쟁 중인 도시와 지진으로 무너진 시멘트 더미 속에 들리지 않는다. 미안한 마음에 물을 주면 아이들의 화초는 건강하게 자랄까? 부모는 신에게 도움을 청한다. 제발 내 아이의 생명을 나 사는 동안 빼앗아 가지 말아 달라고... 안타깝게도 부모의 불안은 아이의 첫 울음소리와 함께 탄생하며 성장해온 듯하다. 내 어머니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나에게 "엄마가 미안해" 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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