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술처럼 권하는 결혼
엄마는 애주가, 아빠는 금주 중
좋은 타이밍이었다. 내 아버지께서도 어머니와 사별 후 새로운 분을 만나고 계셨고, 15년 이상 살던 집을 팔고 이사를 가야 할 시점이었다. 아버지께서도 마지막 남은 결혼 안 한 자식을 처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결혼을 망설이는 이유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다.
내 결혼 생활의 기본 틀은 맞벌이였다. 함께 고생하며 인생 항로를 헤쳐나갈 또 다른 자아를 찾는 것, 그 게 기본 전제였다. 당시 하는 일이 없던 아내는 결혼 전 작은 회사에 취업했지만 반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무언가를 끈질기게 참으며 일했던 적 없는 아내는 올해로 10년째 한 직장에 남아있던 내겐 불안정한 존재로 여겨졌다.
'과연 이 사람은 나에게서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
딸은 엄마를 아들은 아빠를 닮았다.
이제 결혼은 일정한 부를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이들에게 사랑만 가지고 결혼하라는 말은 못 하겠다. 내 아버지가 말씀하신 어떻게든 다 살 수 있다는 말은 삶의 질을 배제했을 때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외벌이로 아이 셋을 기르며 잘 살지 않았느냐는 아버지의 말씀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내 어머니 역시 본인의 삶을 챙기지 못한 채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으니 생존의 삶과 잘 사는 것 사이에는 꽤나 큰 간극이 있어 보인다.
외벌이 가족의 삶의 질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우리 세대는 상대적 가난을 증오한다. 시작부터 갖춰져야 출발을 하며, 일정한 틀이 갖춰지지 않으면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불안하게 시작해 보았자 질 게 뻔하니까, 주변 타인의 삶과 비교해 초라해 보이면 자신이 그것밖에 안 되는 존재로 보일까봐 불안해 한다.
강아지 역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내 아버지처럼 결혼 후 어떻게든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달려왔던 이들에게 지금의 세태는 이해하기 힘든 나약한 세대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나를 닮은 나약한 아들에게 결혼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
아들아, 외벌이로 결혼하려거든 그냥 혼자 살아라.
가난과 일하는 것 둘 다 싫어하는 사람은 피해라.
외모보다 중요한 건 게으름이다. 게으른 이는 구제할 수 없단다.
내게 결혼 생활은 군 복무의 연장처럼 느껴진다. 나를 위해 국방의 의무를 이행했던가? 타인을 위해 국방의 의무를 이행했지만 정작 그들은 이를 당연시하며 사소한 손해에 분노하지 않는가.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국방의 의무 반대편에 있는 이들은 그들이 당연시 여기는 자유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누군가의 자유를 위해 희생하는 존재를 말이다. 슬프게도 외벌이의 삶 역시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