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모두 각자의 이유가 존재한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내려는 타입과 최대한 위험한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는 타입의 사람이 있을 따름이다. 집에서는 개차반인 사람이 회사에서는 인정받는 인재인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낮에도 놀이터에 다녀온 아들은 밤에도 밖에 나가고 싶어했다.
"아빠 산책 가자"
샤워를 시키고 드라이로 머리카락 말리기를 거부했던 딸은 계속 TV를 보고 싶었으나 마음이 바뀌었는지 옷을 주섬주섬 입는다. 내일이면 3월, 하루만에 겨울이 봄이 될 순 없다. 적당히 차가운 공기와 오후 9시가 지나서인지 차가 상대적으로 적어졌다. 퇴근 시간과 각자의 집에 도착하는 시간대인 오후 6시에서 8시 무렵은 골목 길에도 차들이 많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기엔 위험한 시간이다.
9시 이후, 골목 길의 위험도가 떨어지지만 산책이랍시고 당도한 놀이터에서 뜻하지 않은 위험을 만났다. 집에서 챙겨온 장난감을 손에 쥐고 놀이기구에 오르는 아들을 보고 있을 무렵 등 뒤에서 딸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오십견 예방을 위해 만든 어깨 운동용 원형 회전 운동 기구 손잡이에 입을 강타당한 모양이다. 붉은 피가 입술 주변에 흥건하다. 이 사이사이에 치석 대신 빨간 피가 선명하다.
"아빠, 아파요. 안아줘요"
나는 그 순간에도 검은색 털옷을 입고오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놀이터를 탈출하는 방법 중 제일은 엄마의 애원도 아니고 배고픔도 아닌 아픔이다. 재미와 아픔은 같은 집에 사는가 보다. 현관 문 안의 아내는 딸 아이의 피 흘리는 모습에 남편을 원망한다. 상처 부위가 이나 잇몸이 아닌 아랫입술이 터진 것을 확인했다. 딸 아이의 아랫 입술이 윗 입술보다 두꺼워지면 지금 이 순간을 평생 기억에 담을 것 같다.
한국 나이 다섯 살, 이 때부터가 진짜 조심해야 할 순간이다. 근육양도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정도로 성장하고 대근육과 소근육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 자신감이 과한 때다. 뭐든 다 자신이 나서서 해내야 직성이 풀리고 호기심이 해결된다. 나는 저 시기에 골목 길에서 달려오던 트럭에 치여 의식을 잃었고 몇 해 지나 동네 형이 눈 앞에서 익사했고, 다시 몇 해 뒤 놀이터에서 놀다가 철제 놀이기구에 머리가 깨져 울면서 집으로 향하다 의식을 잃었다.
불과 3~4년 사이 세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나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좌불안석이었을 것이다. 아이가 다치면 부모의 마음에도 상처가 생긴다. 난 너무 많은 상처를 부모에게 선물했다. 어머니껜 생전 손주도 보여드리지 못한 불효를 저질렀으니 말이다.
모두들 각자의 상처가 남아있다. 고통을 극복하고 이겨내려는 타입과 최대한 위험한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는 타입의 사람이 있다. 아내는 후자이다. 적어도 아이들에게만큼은 상처없이 키우고 싶은 모양이다. 나에겐 그리도 온실 속에서 자란 듯하다며 나무라더니 '왜' 온실 속에서 자라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아내 역시 알지 못한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안전하게 성장시키기 위해 부모는 온실을 마련한 거였다.
아들은 겁이 많아 다행이다. 아빠 역시 죽음 앞에 겁쟁이라 살고 있다.
지구가 '왜' 돌고 있는지 아들이 물었다. 회전 에너지의 타격은 딸의 몫이었다. 지구가 살아있어서 운동 에너지를 생성하는 게 아닐까? 살아있는 모든 순간은 고통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