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낮잠을 거부한 첫째는 잠이 들었고 둘째는 회식을 다녀온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와 함께 잠들었다.
3년 전 코로나로 학교 체육관이 문을 닫으면서 운동 모임이 중단되었다. 지난해 중순부터 학교체육관이 다시 개방되었지만 이전만큼 많은 회원들이 나오지 않았다. 운동 모임의 공식적인 마지막 회식 모임이었다. 15년 전 원년 멤버를 비롯 20대 중반의 어린 멤버까지 열두 명 가량이 모였다.
십자인대가 끊어져 운동을 접은 친구는 다 다음 달에 결혼을 한다고 알린다. 신체 능력도 좋고 재능도 있는 어린 친구는 아마추어 대회에 다니며 농구를 즐기고 있다. 농구하다 손가락 마디가 골절되어 반기브스를 하고 나타난 대학 동기는 부상이 완쾌되면 다시 코트로 돌아올 예정이다. 그렇게까지 악착같이 농구를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농구가 재미있다 말한다. 육아나 집안 일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기도 하고, 골프는 여유가 되지 않아 엄두가 안난다 한다. 그러고 보니 대학 동기들 중 삶에 여유가 있는 경우 골프나 스키를 즐기고 있다.
반면 나는 모든 운동에 흥미를 잃었다. 여유가 없다보니 운동을 하고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는다. 농구도 테니스도 배드민턴도 스키도 말이다. 이전에는 아빠가 운동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줘야지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런 마음도 접은지 오래다. 40대 남자가 운동을 꾸준히 하는 건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이고 50대 남자가 운동을 꾸준히 하는 건 건강을 과시하는 행위이다.
코로나 기간동안 부업으로 음식 배달을 하며 지내온 이야기는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굳이 허세와 경쟁의식이 강한 집단에서 개인의 어려운 사정 이야기 해봐야 분위기만 가라앉을 것 같아서 말이다. 회원들끼리 만나면 농구 이야기만 하던, 누가 더 잘 하는지를 겨루고 어느 방향이 맞는지에 대해 나누던 대화들은 아이 키우기 힘든 현실적인 이유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주제로 전환되어 있었다. 아직 결혼 하지 않은 친구들은 농구 이야기를 하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나 역시 결혼 후 삶의 중요도가 바뀌었다. 개인의 만족감, 취미생활을 극대화하는 삶에서 생계로 말이다.
아내 역시 이제는 취업을 준비 중이다. '경력 단절' 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경력이라 불릴만큼 한 가지 일을 10년 이상 꾸준히 해왔던 건 아니기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어제는 저녁 식사때만큼은 스마트폰 보면서 밥 먹지 말라는 당부를 들어주었다. 10년 후 자녀들이 식사 시간에 스마트 폰을 보면서 밥을 먹고 있을 걸 허용한다면 아내 역시 그렇게 생활해도 되지만,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복사하는 시기에 스마트폰과 술에 중독되어 사는 건 아이에게도 똑같이 그런 미래를 살라고 권유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지금의 나와 내 배우자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자녀의 미래도 달라질 수 있다. 말과 행동을 달리했을때 미래는 달라진다.
요즘엔 최대한 일찍 퇴근하고 있다. 오후 6시 30분에 태권도장을 다녀오는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말이다. 오전 7시 45분 어린이집 등교 버스에 올라 태권도장까지 다니는 5살 아이들이 아빠와 동일한 생활 리듬으로 하루를 살고 있어 마음이 무겁다. 아래막기를 배웠다는 아들과 태권도장 전단지를 들고온 딸은 평소보다 밥도 많이 먹고 푹 잠이 들었다.
주말은 아이와 보내고 있다. 토요일 이른 오후까지만 일하고 일요일 저녁까지는 아이와 집안 일을 돕고 있다. 그러지 않으면 정부에서 주 69시간까지 일을 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칭찬 스티커를 가득 모아 소방차를 사주었다. 장난감 코너에서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선택해준 아들이 고마웠다.
아들은 도장에서 아래막기를 배웠지만 아빠는 지출막기를 배우지 못하고 월급을 다 써버렸다. 아직 보름 넘게 급여일이 남았는데 아빠도 도장에 다녀야 하나?
흰 띠가 색이 변해 나중에는 검은 띠가 된다는 아빠의 말에 다음 날 띠의 색이 왜 그대로인지 묻는다. 승급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아빠에겐 여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