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by 이백지

"초는 몇 개 필요하세요?"


"다섯개요, 아니 여덞개요."


"작은 초 여덞개 넣어드리면 될까요?"


"큰 초 1개, 작은 초 3개요."


두 팀의 주문을 더 받은 직원은 케이크를 건네주며 큰 초 하나와 작은 초 여덞개를 넣었다고 말했다.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나는 큰 초가 5년을 암시한다고 생각했다. 매번 이상한 갯수의 초를 가져다 주었다. 역시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며 위로했지만 마흔을 넘겨서도 숫자와 초 길이의 상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딸기가 들어간 케이크는 품절이라 했다. 결혼 8년차인 품절남은 현관문을 열어 집주인이 되어보려 했다. 다섯 살 아이들이 눈으로 냄새를 맡으며 케이크를 뺏어간다. 집의 주인은 아이들이었다. 손바닥으로 케이크 상자를 받쳐들고 주방으로 향하는 딸을 보며 손에서 상자가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했다. 매형의 말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잘못이 없어. 다 어른이 잘못 가르친 탓이야,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어." 평소 가치관이 잘 드러나는 대사였다. 다행히 이번엔 내가 휘청이는 케이크 상자를 낚아챘다. 적절한 챔질이었다. 다시 내가 주인이 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뭐든 직접 해보고 싶어한다. 성냥에 불을 붙여 초에 이식한다. 나 역시 처음 성냥의 불을 초로 옮길 때 성냥보다 손가락이 위에 있었다. '불의 뜨거움도 경험시켜줘야 할까?'를 고민하던 찰라 성냥의 재가 아이의 손가락으로 떨어졌다. 화들짝 놀란 아이는 겸손을 배웠다. "불은 위를 향하고 물은 아래로 움직여" 다만 검게 타버린 성냥의 머리는 목이 꺾인채 아들의 손에 과분한 뜨거움을 전달했을 따름이다.


"앗 뜨거, 무서워"


아들은 죽음이 무섭다고 말한 적이 있다. 딸과 놀 때의 "죽어~"와는 다른 개념이었다. 과분한 고통과 함께 찾아오는 죽음을 나 역시 다섯 살즈음 처음 목격했다. 함께 모험을 떠났던 동네 형은 하수종말처리장에 빠져 모험을 마치지 못했다. 둔탁한 풍덩 소리를 들었고 터널을 빠져나와 도망쳤다. 터널 안에선 느껴지지 않던 햇빛은 명명백백 삶을 감시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듯 집으로 돌아왔다. 내 앞에서 동네 형이 죽었는데도 말이다. 방역차에서 뿜어져나오는 연기처럼 동네 이곳저곳에 소문이 도착했다. 소문은 돌고 돌아 엄마에게 전해졌다. 나 역시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나를 데리고 갈까봐 무서웠다. 형의 어머니께서는 나와 마주할 때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셨다. 아마도 막내 아들을 가슴에 묻어두어 목소리의 파형이 그 장소의 나에게 닿는 듯했다.


"도망쳐, 이 굴에 호랑이 따윈 없으니 너의 삶을 살아가"


뜻하지 않게 다섯 살 아이들은 자신보다 몇 년 더 산 언니, 누나, 형들의 놀이문화에 가스라이팅 당하기도 한다. 딱 그럴 나이다. 신체 능력도 자신보다 좋고 글씨도 쓸 줄 알고 숫자도 명확하게 인식하는 그들은 미래에서 온 선지자 내지는 외계문명으로 여기는듯 신봉한다. 이웃집 아홉살 아이와도 그렇게 지낸다. 어린이집 하원 후 아홉살 인생이 그린 보물지도를 지표 삼아 주차장 이곳 저곳을 탐문하듯 직각으로 돌아다닌다. 아홉살 인생의 지령으로 탐정이라도 된듯 의기양양하게 정보를 수집하는 아이들 너머 경찰 두 분이 이웃집 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할머니께서 보이스피싱을 당해 검사라는 분께 송금을 하신 모양이다. 경찰 분은 지급정지는 하셨는지 물으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아홉살인생님께 가스라이팅 당해 애초에 없던 보물을 찾아 헤매고 있다. 저녁 준비를 끝낸 엄마가 아이들을 잡으러 나선다. 구속영장이 없던 아내는 맴매 수사를 통해 아이들을 차례차례 검거해 나갔고 내일은 언니와 놀 수 없단 판결이 내려졌다. 아내는 아이들이 아홉살의 선진 놀이 문화를 체득하는 것을 경계했다. 나는 추후에 며느리가 될수도 있으니 잘 대해 주는 게 도리라 말했다. 아내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노를 저었다. 마도로스 아내는 늘 갑판 위에서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캔을 마시고는 안방 섬에 닻을 내린다. 금일 출항 계획은 각종 썰들이 넘쳐나는 유튜브 해이다.




저녁 수사에서도 보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 걸 찾고 있는 너희들이 보물이란 사실을 출산이라는 보물지도에 숨겨두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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