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랄이 안장에 눌려 육각렌치로 포지션을 조정했더니 이격이 발생해 축을 잡아주는 나사가 부러졌다. 부랄은 자녀 생산 후 특별히 할 일이 없어 파괴적인 모습으로 변모했다.
결혼을 후회했다. 후회의 범위는 '좀 더 일찍 했더라면 아이와 오랜 시간을 젊은 상태로 함께 머무를 수 있었을텐데' 그리고 더 좋은 선택지에 대한 부분이다. 불과 1~2년 전만 하더라도 결혼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었는데 아이를 키우며 포지션이 조금 바뀌었다. 마치 자전거 안장과 핸들 사이의 높이나 각도에 따라 편함과 불편함이 결정되듯 안장이 되어줄 사람과 조향을 관장하는 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신혼 초 서로 핸들을 담당하려고 자전거가 똑바로 나아가지 못했다. 상대의 엉덩이 무게를 지탱해줄 그릇이 서로 준비되지 않았었다. 비틀비틀 결혼 라이딩의 최종 목적지는 자식 농사였다. 농사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 쉬엄쉬엄 살 수 있을까? 그렇게 느긋하게 살다간 주변부로 나가떨어지는 서울에서 별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아쉽게도 빌딩 숲에는 별이 살지 않는다.
"한 잔 해"
"아이들 다 키우고 나면 마실게요."
지난 명절 아버지와 나눈 대화다. 난 아직 농사가 끝나지 않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아직 해야할 일들이 산적해 있어 저녁과 전역이 보장되면 술을 입에 댈 예정이다. 군 시절 간부 중 한 분이 12월 31일에만 담배를 태우셨다. 나이가 지긋한 부사관이셨고 내 딴엔 그 모습이 낭만처럼 느껴졌다.
"오늘 배달이 많이 없나요?"
"아까 점심 시간부터 주욱 콜 자체가 없어요."
가끔 음식점 사장님들께서 바깥 상황에 대해 묻곤 하신다. 자기 가게만 배달 주문이 없는 건지를 물어보는 질문엔 음식의 온도만큼이나 따뜻한 위로의 답변이 필요하다. 소비자가 주문을 해야 가게에서 음식도 만들고 배달도 하는 것이다. 주문양 자체가 적으니 가게 사장님도 라이더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길에 우두커니 서서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라이더들이 많았다. 배달이 끝남과 동시에 뒷콜이 따라붙고, 조리대기 시간을 최소화해야 시간 당 2만 원에 가까워진다. 대기시간이 길어질수록 시간 당 1만 원에 가까워지는 배달 부업의 세계다. 폭우의 날씨가 아니고서는 PAS 자전거로 시간 당 2만 원 수익을 내긴 사실상 쉽지 않다. 3~4시간 기준으론 시간 당 1~1.5만 원 사이를 번다. 누군가에겐 푼돈일 수 있지만 적어도 내겐 생활에 필요한 소중한 돈이다.
음식 배달은 낮 시간이 더 힘들다. 그 시간엔 사람도 많고 차도 많다. 차도와 인도를 오가는 자전거로는 피해야할 대상이 많아질수록 시간이 지체된다. 더위와 추위도 고생 요소지만 가장 퇴근을 재촉하는 건 기다림이란 시침과 초침이다. 나는 주업도 내 차로 업무를 보고 있다. 그야말로 탈 것에 의지한 삶이다. 공부는 엉덩이가 의자에 오래 앉아있어야 잘하는 거라고 하던데 돈벌이도 유사하다. 물론 누워서 돈 버는 이들도 나름의 고충은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앉아서 돈을 번다. 서서 근무를 하는 직업군은 더 힘든 업무강도에 내몰린다. 또한 땅에 발을 딛지 않고 돈을 버는 직업군도 있다. 줄에 매달려 아파트 외벽 도색을 하는 이들이 그렇다. 준비 시간, 쉬는 시간, 점심 시간에만 땅에 발을 딛는다. 배를 타는 이들도 땅과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다.
나는 요즈음 탈 것에 관심이 많다. 사지도 않을 것들을 유심히 보고 있다. 지금 사용 중인 자전거도 퇴근 길에 승합차로 음식 배달 부업을 하고 있는 내게 누나가 준 선물이다.
"아는 사람이 전기자전거 안쓰고 있는데 너 탈래?"
경유 가격이 리터당 1700원 이상이었고 기름값을 제하면 그야말로 무료 봉사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일을 했고 주급으로 들어오는 돈을 모아 아파트 관리비나 보험료 등을 납입했다. 한때 아버지께서 사용하시던 중고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었다. 백화점 지하에서 근무했었고 밖에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라이더들에게 밖의 상황이 어떤지 물어볼 수조차 없던 배달앱 런칭 1년 전의 일이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며 자전거로 왕복 20km 거리를 출퇴근 했더니 57kg까지 살이 빠졌었다.
창 안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배달 시장엔 도보 배송과 자전거, 킥보드, 오토바이, 승용차 등을 활용해 음식이 전달된다.
주말엔 60~80km 거리를 전기자전거로 달리고 있다. 안장에서 엉덩이를 떼고 서있으면 농구선수의 시선도 느낄 수 있다. 그 자세로 핸들을 좌우로 비틀면서 페달을 밟으면 20대 때의 몸에 근접해진다. 편하게 탈수록 몸은 20대와 멀어진다. 쉬엄쉬엄 편하게 살고 싶은 꿈도 있지만 그럴수록 빠르게 노후가 진행된다. 자전거도 오랜 시간 타지 않으면 삭는다고 한다. 중년 남성의 성기처럼 말이다. 썬크림을 성기에 바르면 미백효과가 있을까 궁금했지만 어차피 햇빛도 볼 수 없는 어둠의 자식에게 공들여 무엇하랴. 사용 후기도 올라오지 않는 방치된 불수의근이거늘. 그냥 발효나 되라지. 술도 담배도 끊은 지금이 가장 가난하지만 건강한 삶인지도 모르겠다. 4시간 동안 페달을 밟아 번 돈으로 주말 저녁 아버지와 아내, 아이들을 데리고 칼국수를 먹고 왔다. 한끼 식사로 4시간 동안 번 돈보다 몇 천원을 더 지불했지만 원래 가족들을 위해 사용하려던 돈이었다. 모자란 몇 천원은 다시 나가 일을 해서 채우면 된다. 때마침 아시안게임의 야구와 축구 한일전 결승 경기가 있는 날이다. 부산엔 비까지 겹쳐 건 당 만 원짜리 콜이 넘친다고 했다. 저녁 배달앱 화면 목록엔 낮과는 상반될 정도로 콜들이 넘쳐났다. 조리대기로 10분 이상을 기다리다가 배정취소 버튼을 누르고 다른 콜을 잡았다. 데이트를 하던 연인의 대화소리가 들린다.
"나 그 거 먹고싶어."
오전에도 아내에게 들었던 말이다. 침대에 누워 칼국수가 먹고 싶다던 아내는 누워서 돈을 쓰는 직업군이다. "먹지 마" 물론 내 옆을 스쳐간 연인에게 장난스럽게 건낸 혼잣말이다. 칼국수를 먹고 나오는 길에 딸에게 턱이란 단어를 설명해 주었다. 주차한 차를 빼려면 낮은 턱을 넘어야 했다.
"한 칸짜리 계단이 턱이야. 턱에 살이 쪄 이중턱이 되면 그땐 턱이 아닌 계단이 되는 거지!"
딸은 아직 내 설명을 이해할 턱이 없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아빠가 칼국수를 한 턱 쐈다.
김첨지의 설렁탕은 알뜰배달이었을까? 첨지의 아내는 조리대기 시간에 기다리다 지쳐 잠이들었다. 가난의 깊은 잠은 깨지도, 깨지기도 버겁다. 누군가를 키우려거든 자기 자신의 가난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대들은 삶을 내어줄 용기를 지녔는가? 나는 아직 농번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