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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지 Oct 16. 2023

부의 미래

하나의 생명이 탄생해야 하나의 가능성이 열린다. 딸의 미래는 엄마였다.


"저 선생님 제가 왜 당신의 아빠란 거죠? 전 결혼을 해본적이 없는데요."


복도는 항상 어두웠다. 복도를 지나면 환한 빛이 가득한 천국에 다다를 것만 같았다. 정해진 시간에 식사가 나왔다. 가끔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을 가기 위해 시설을 떠났다. 가끔 나를 아빠라 부르는 사람이 찾아온다. 내가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지낸 삶이 있었던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들이라 자신을 소개한 이는 옛 이야기라며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위해 책을 읽어준다.






생선 뼈를 발라낸다. 장모님께서는 이혼 후 만나게 된 두번째 남편을 두고 그이가 예전엔 생선 뼈도 잘 발라주었다고 말했다. 딸이 첨언한다.


"꼬실땐 뭐든 못하겠어. 게으름이 사랑을 이긴 거지."


지금은 손 하나 까딱 안한다고 투덜대신다. 뼈를 골라내어 손녀와 손자에게 살을 내준다. 딸에게도 밥그릇에 생선 살을 올려주고 나에게도 먹어보라며 접시 위에 뼈가 없는 생선을 내어주신다. 아내의 새아빠 평론과 비슷한 표현을 며칠 전에도 들은바 있다.


"학원에서 친하게 지내는 언니가 얘들 장난감 주신대."


몇시쯤 받아올 수 있냐는 물음은 명령에 가까웠다. 커다란 쇼핑백에 담긴 장난감을 받아왔다. 친하게 지내는 언니를 약속장소에서 만났는데 정말 친하게 지내고 싶은 외모였다.  


"언니가 당신 착하게 생겼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내가 결혼 전에는 착했다고 말했지."


나는 왜 결혼 후 착한 사람이 아니게 된 걸까? 딸의 TMI 표현에 함축된 진실이 들어있다. 주말 아침 강아지 산책을 시키려는 움직임에 아들이 따라 나섰고, 동네 미용실 가게 오픈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들에게 이발하러 가자 말했다. 이번엔 딸도 함께 가겠다고 한다. 미용실에 도착하자 딸이 고급정보를 흘린다.


"엄마는 집에 누워있어요."


사장님께서는 바람빠진 풍선처럼 피식 웃고는 부자의 목에 천을 두르셨다. 평소 딸이 가진 꿈을 소개한 말이었다. 일전에도 딸은 나에게 말한적이 있다. 아들이 먼저 "나도 이 다음에 커서 아빠처럼 일할래."라는 말에 맞서 딸은 "나도 이 다음에 커서 엄마처럼 누워있을래!"라고 말했다.






"나머지 이야긴 다음에 와서 읽어드릴게요."


아내란 사람이 나처럼 환자인가? 어디 아픈 건 아닌가를 떠올리던 참이었다. 잠깐씩 기억나는 것들은 횟집의 생선처럼 죽은 세포들이 뒤집혀 떠오르듯 참혹하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생의 종착역에 가까울수록 후회나 슬픔, 기쁨 따위의 감정에도 무뎌진다. 고통에 눈물을 할애하고 나면 나머지 감정에 눈물샘은 이미 말라있다. 누구인지 모르는 젊은이가 가지고 있던 책을 덮으며 인사한다. 옆엔 나를 빤히 바라보는 여자 아이 하나가 있다.


"할아버지 안녕히 계세요."


무어라 말한 건지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 내 귀는 이미 다른 시간대에 있는듯 하다. '나도 이 다음에 커서 엄마처럼 누워있을래.' '나도 이 다음에 커서...' 나는 그 딸이 말하던 미래에 도착해있다.






아빠의 미래를 읽고 머리를 흔드는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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