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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지 Oct 28. 2023

그대들 어떻게 생존할텐가

아들이 배를 열고 자고 있어 이불을 덮어주었다.

 

"안자고 뭐해?"


어린이집에 보냈던 도시락통을 분해해 씻어둔다. 이 시간이면 마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세탁기에 세탁물을 넣고 돌린다. 세탁물을 꺼내 건조기에 돌린다.


"나한텐 이 시간이 아침이야"


새벽 3시에 잠이 깨어 부산하게 움직인 후 출근한다.


"아빤 어떤 음식 좋아해?"


잠이 들 무렵 아들이 물었다. 침대에 고인처럼 누워있던 나는 '초밥'이라고 웅얼댔다. 그 모습이 마치 '아빠 마지막 가시는 길 무얼 드시고 싶으세요?' 질문처럼 느껴졌다. 아들은 초밥이란 단어에 지문을 새기듯 되뇌였다.


"근데 초밥이 뭐야?"


김 대신 생선이 밥을 감싸고 한 입에 먹기 편하게... 따위의 설명을 생략한채


"생선으로 만든 밥이야."

.

.

.


"아빠하고 양치하고 와"


엄마의 불호령에 선잠을 억지로 깨운다. 아이 엄마 역시 양치를 안하고 자면 이가 썩어 치과에 가야하고 치과에 가면 아프기도 하거니와 돈도 많이... 따위의 설명은 생략했다.


"아빤 닭볶음탕도 좋아해"


아들과 양치하며 초밥을 밀어내고 닭을 소환했다. 초밥은 일본 여행 중 모리타워에서 먹었던 초밥세트였고 닭볶음탕은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음식이다. 음식은 추억이 담겨야 '최고의 맛' 칭호가 부여된다. 오사카 시장에서 먹었던 가츠동도 최고의 맛 중 하나였다. 아침 점심도 못먹고 허겁지겁 오른 공항버스와 비행기, 신칸센인지 JR인지 감으로 뛰어들어 타고간 전철, 비를 맞으며 캐리어를 끌고 다니다 오후 3시 40분 첫 끼로 먹은 가츠동은 이후의 모든 일정을 잊게 할만큼 배를 따뜻하게 덮어주었다. 오사카 여행을 함께했던 친구는 더이상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예수가 살던 나이만큼만 살다간 이 녀석은 이제 가장 젊은 존재가 되어 인생의 점심식사만 먹고 떠나버렸다. 친구는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진 이후 나를 한 번도 집으로 초대해 주지 않았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에 살다 인근의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 집은 친구의 내면처럼 어두웠다. 반지하가 아님에도 집 안 내부엔 빛이 들지 않았다. 가난한 곳엔 빛도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초대한적 없는 빚과 빗물이 들이친다. 오송지하차도를 지날때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친구가 떠난 집에 경찰과 함께 방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왜 그토록 잠을 제외한 모든 행위들을 밖에서 해결하고 싶어했는지 이해가 갔다. 매번 퇴근 후 약속을 잡아 친구들을 만나고 집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발걸음이 구슬프게 그려진다. 친구의 부모님께서는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셨다. 다행히 바람은 찾아오는 집이었다. 모두가 더 좋은 집을 바랄 때 그의 부모님께서는 천국의 집을 짓고 계셨다. 그러나 현생의 건축헌금은 아들이 사는 천국에 전달되지 않았다.



또다른 친구의 위태한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나 지금 여기에 아직 생존해 있어'라는 수신호처럼 보였다. 친구는 폐점 후 배달 알바를 해야겠다고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몇 달 전 친구 가게 부근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 공사가 마무리 단계였다. 아무래도 공사가 끝나고 손님들이 연극무대처럼 빠져나간듯 했다. 심성이 워낙 착한 친구라 외부적인 요인으로 술 잔도 들지 않았다.


"다 내가 이삼십대 때 돈 버는 노력을 덜했던 탓이지."


녀석에게서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의 향기가 느껴졌다. 친구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중학생 무렵 소천하셨다. 학교를 나오지 않는 친구가 걱정되어 선생님께 찾아가 여쭤보았더니 아버님께서 위독하셔서 지금 응급실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병원을 찾아가 보았으나 친구를 만날 수 없었다. 아직 너무 어려서 운구 행렬의 시간을 따라잡지 못했던 것 뿐이다. 동네 아주머니는 친구가 어디로 이사갔는지 아냐고 물으셨다. 유선전화 너머로 도움을 바라는 어조가 느껴졌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도와야 하는데 누가 더 어려운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은행원이셨던 친구 아버님에게 주식 투자금을 맡겼을 뿐인데 IMF가 터지자 투자 원금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시대가 그랬다. 내 아버지 세대는 곗돈이 흔했던 시기였다. 코인 광풍처럼 한없이 오를 거라 믿었던 사람들의 심리가 한순간에 무너져내린 때였다. 그 믿음은 탕자처럼 빚이 되어 돌아왔다. 친구는 도망치듯 동네를 떠났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자신의 삶을 증명하는 행위이다. 생존해 있는 모두가 존경의 대상이다.


"10년 후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마 지금보다 더 힘들지 않을까?"


두 녀석은 술잔을 기울이고, 나는 사이다 캔을 부딪혔다. 기혼자나 미혼자 모두에게 기나긴 겨울의 혹독함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녀에게 고기잡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물고기들의 합계 출산율마저 0.7마리에 불과하다. 낚이는 거라곤 사람이 사람을 현혹시키는 보이스피싱 챔질 뿐이다. 이제는 자녀에게 낚는 법이 아닌 낚이지 않는 법을 설명해주어야 할 판이다.





자녀들에게 박스터 두 대를 만들어 주었다. - 파르쉐, 스투트가르트레포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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