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백지 Nov 16. 2023

축복의 짐 2

나는 음식 배달하는 것을 천한 일로 여기지 않기로 다짐했다. 내가 하는 일을 천하게 여기면 나 역시 천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가끔 비참한 단가에 일을 수락할지 말지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그런다고 주머니 사정이 달라지진 않는다. 나 하나 업무 수행을 하지 않아도 티나지 않는 세상이다. 나는 필요없는 존재인가하는 생각도 든다. 동시에 드는 생각은 새들처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무인 문구점에서 산 토끼인형과 변신 자동차를 가지고 노는 모습에서 어찌 이리 조악한 장난감을 사왔는지 묻지 않았다. 아이들이 만족할만한 가치의 장난감이기 때문이다. 토끼는 두 발로 서있고 앞다리는 귀만큼 길었다. 변신자동차는 카봇이나 또봇을 겨냥한 패러디 상품같았다. 하긴 이 나이때 아이들에겐 띠부띠부씰 스티커도 멋진 선물이지. 중학생즈음 되는 조카에게 띠부띠부씰 스티커를 주니 이제 이런 거 안 모은다고 말한다. 아이는 성장해 더 높은 가치를 원하고 있었는데 시간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어린이들이나 좋아할만한 시시한 선물이 들어있는 빵이 한 때 나의 점심식사였다.



그러고보니 나만 빵, 김밥,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해서인지 원하는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어른도 성장할 수 있는데 말이다. 2025년 기준, 병장 월급이 200만 원까지 오른다는데 40대 초반의 내 기본급은 아직도 255만 원 수준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내 가치가 병장들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 한 숨이 절로 나온다. 물론 성장을 등한시했던 결과라 어쩔 수 없다지만 나처럼 중소기업 외벌이 가장에게 자녀 양육은 지나친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사교육은 물론 대학 진학, 결혼까지 지원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동창은 벌써 3억의 대출로 가정을 꾸렸다. 자녀 양육을 위해 이사한 신축 아파트, 북유럽 감성의 가구 인테리어, 동네 상권에 입성한 프랜차이즈 카페가 친구를 소상공인 대출까지 추가로 받으라고 강요 중이다. 나 역시 1억의 대출을 안고 이사를 했었다. 나머지 금액은 아버지의 도움이 있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아도 층간소음 걱정이 덜한 1층집으로 이사왔고, 이사한 날 너무 기뻐서 음식 배달을 해준 라이더에게 팁으로 5천 원을 주었다. 그때까진 나 역시 주말마다 음식배달 투잡을 하게될 줄 몰랐다.



내 윗세대 어른들은 통장을 들여다보지 않은채 자식을 키운 듯하다. 우리세대의 절반쯤은 아이를 짐으로 여기며 십자가를 거부하는데 말이다. 돈도 없고 능력도 없으면 아이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자랄지 걱정부터 앞서는 사회 분위기에 발기와 사정이 폭력적으로 해석된다. 폭력을 휘두른 대가가 대출이라면, 더 많은 대출금액만큼 아내를 사랑한다면 나는 하루 빨리 은행대출을 갚고싶다. 현관문 앞까지 빵과 음식을 제공받는 서비스, 각종 OTT 구독과 유튜브 프리미엄, 핸드폰 무제한 데이터 요금과 보험사의 운영비로 일부가 쓰여질 보험비, 이 모든 비용의 절반 이상은 걱정에서 비롯된다. 아이의 사교육 역시 아이의 뒤처짐을 경계하는 부모의 걱정에서 출발한다. 모두의 삶이 승강기를 타고 오르듯 상승한듯 한데 나만 1층에 머무르는 걸까? 아니면 모두가 보여주기식 소비를 과시하고 사는 걸까?



나만 정체되고 불행한듯 보이는 건 내 삶에 자랑거리가 없어서이다. 자식자랑이라도 꾸준히 하는 사람은 부지런한 근성이라도 있는데 그마저도 자녀가 10대, 20대에 접어들수록 자랑의 횟수가 뜸해진다. 자식 자랑 레이스에서 도태된 가정은 자녀라는 축복을 짐으로 치부할까? 어찌보면 신세한탄만 하는 부모 앞에 자랑거리 하나 없는 자식은 축복이 아닌 짐일수도 있겠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텐데 부모의 행복에 대한 기대치는 상류층의 삶을 꿈꾸는 것처럼 너무나 높고 멀기만 하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아이들도 따라 배울텐데 무거운 현실의 짐이 전해질까 걱정이다.






아이는 드라마처럼 하늘의 별똥별을 담고 싶어했다. 내 삶의 드라마는 이 아이로부터 시작됐는데 말이다.
이전 20화 신은 존재한적 없는 기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