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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지 Nov 22. 2023

없어요

결혼 후 뚜껑이 항상 열려있었다. 불만이 많았고 대부분 해결이 쉬이 되지 않았다.

아내는 홈스테이 주인 할머니 같았다. 저녁을 밖에서 먹고 들어오는 날이면 사전에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그래야 저녁 준비의 수고를 덜 수 있다며 말이다. 오후 8시가 지나면 아내는 안방에 누워있거나 식탁에 앉아 술을 마신다. 나는 홈스테이 학생처럼 조용히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는다. 아이들을 씻기고 나서야 퇴근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내 잠들 시간이다.


나는 요리를 할 줄 모른다. 하루 세 번의 식사 시간, 결국 타인의 손을 빌려야 내 속을 채울 수 있다. 충전을 자주 해줘야 하는 건 여러모로 번거로운 일이다. 결혼 전까지 밥솥엔 밥이 항상 있고 냉장고엔 각종 반찬이 구비되어 있는 게 정상인줄 알았다. 결혼 후 알게된 사실은 결국 집에 먹을 거리가 있다는 건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쌓인 결과라는 점이었다. 아내는 그 수고로움을 홈플러스 배송기사에게 전달했다. 퇴근 시간 집 앞에 놓여있는 택배나 배송 상품을 보면 타인의 수고로움을 얼마나 의지하며 사는 집인지 알 수 있다.


음식도 사람도 요즘 것들이 더 신선한 법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빵과 음식, 경유 가격도 올랐다. 이제는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는 일조차 용기가 필요한 시대다. 물론 음식을 담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없는 나는 오늘도 2500원짜리 편의점 김밥 한 줄로 점심을 해결했다. 먹을 거 아낀다고 삶이 부유해지는 것도 아닌데 참 오랜 시간 먹는데 쓰는 돈을 아까워 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을 절반 가격에 판매하는 마트에 가보았다.

'오늘은 없네'

할인 스티커가 붙어있는지 여부를 살펴보았지만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매장에 방문한 타이밍과 제때 판매되지 않은 품목의 '아다리'가 맞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와 나는 고등학교 때 잠깐 만나다 헤어지고 혼기가 찬 상태에서 다시 만났다. 아내는 그 당시 결혼 상대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아내의 신랑감 레이더 망에 내가 잡혔고 다시 만난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결혼을 하게 되었다. 타인의 시선으로는 로맨스지만 내부적으로는 결국 제자리란 느낌이 강하다. 더 좋은 상대를 만나보고 비교해봐도 늦지 않았을텐데 '혼기'란 단어에 '마감임박'이란 초조함이 담기다보니 저울질할 겨를이 없었다. 반면 자신보다 조건이 좋은 상대를 만나 상승혼에 성공한 친구는 30대 때완 달리 삶이 여유로워 보인다. 아내에게 명품을 선물 받고 별 필요없는 사치품에 괜한 돈을 쓴 거 같다며 후회된다고 말한다. 그 집 아들이 나에게 묻는다.

"삼촌은 왜 차가 한 대밖에 없어요?"

주변 삼촌들 모두 집에 차가 두 대씩 있다고 했다. 자기 집에도 차가 두 대라 어른들은 누구나 인원 수대로 차를 구입하는줄 알고 있다. 자율주행이 상용화되면 성인이 되기 전에 자동차를 생일 선물로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얼마 전 아내가 밥솥 뚜껑의 스프링이 빠졌다고 어디로 도망갔는지 찾아달라 했다.

"없는데?"

아내는 밥솥을 수리하거나 새로 구입하지 않았다. 대신 즉석식품 밥을 한 박스 시켰다. 소포장된 밥은 전투식량처럼 보였다. 아침엔 컵라면, 점심은 빵, 해질 무렵 편의점 샌드위치, 집에 들어가기 전 드라이브 스루 햄버거를 먹고 집에 당도했다. 무인 편의점에 들러 아이들 아이스크림을 샀다. 아빠가 현관문을 열고 나타나면 뭘 사왔는지 여부로 기대와 실망의 줄다리기가 펼쳐진다. 아이스크림을 채간다. 내가 졌다. 아내는 회를 먹고 있었다. 내가 졌다. 집안에 둔 배송용 스티로폼 박스 두 개와 플라스틱이 담긴 재활용 봉지를 들고 집 앞 담벼락에 가져다두었다. 딸이 따라나온다. 두 손이 가벼워진 나에게 집까지 안아달라 한다. 20kg이 넘어 재활용도 안되는 딸이다.


7년간 사용한 밥솥의 뚜껑이 닫히지 않는다. 딸은 아빠의 품도 밥솥처럼 항상 열려있다고 믿고있다. 아이가 30kg이 넘으면 동동동대문, 남남남대문처럼 아빠의 품도 닫힐 예정이다. 마음만 안아주겠다고 말하면 토라질까? 들어올릴 수 없을땐 슬퍼지겠지. 아니 슬프지 않을 것 같다. 아이의 가슴이 봉긋 솟아오르면 아빠의 품을 거부할지도 모른다. 아빠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면 '안아줘 은퇴'가 가능할까? 다리보다 팔이 먼저 떨리고 허리가 한의원 가자고 조르겠지. 타오르거라! 중년의 불꽃이여. 시시포스처럼 1번 아이를 들어올리고, 2번 아이를 들어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흐르는 건 눈물이 아니다. 은행빚으로 물든 푸른 하늘이 주식 호가 창처럼 흘러내리는구나. 축복치고는 무거운 형벌이다. 벌어도 벌어도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장사하는 모든 이가 말한다. 남는 거 없다고, 남겨야 살고, 후 세대를 키울 수 있다.

우선 저부터 키우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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