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결혼 드라마

육아는 결혼의 이유인가?

by 이백지

남녀 모두의 판타지 중 하나는 내가 구원자가 되어 상대를 힘든 삶에서 탈출시켜주는 그림이다. 드라마라는 포르노를 통해 남자는 영웅이 되는 방식을, 여자는 신분 상승의 마지막 수단을 학습하게 된다. 하지만 늘 가난한 선택을 반복해 왔던 그녀는 오히려 구원자를 만나기 전의 시간을 그리워한다.


나 역시 구원자가 되고 싶었다. 나보다 가난한 사람을 만나 조금이나마 배우자의 생존에 도움이 되길 바랐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내가 원한 상대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아니었다. 비록 가진 게 없어 지하 단칸방에 살아도 씩씩하게 생활하는 생활력 강한 여성 필요했다. 실제로 결혼 전 지하 단칸방에서 자취했던 아내는 고시원에서도 살아봤다고 말했다. 아내가 가난했던 건 일을 꾸준히 안 해서였다. 나는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으나 내 아버지께서는 결혼이란 목표에 이르기 위해 그 정도 단점은 크게 신경쓰지 않으셨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가난한 사람은 늘 가난한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 굴레를 벗어나긴 힘겨워 보이고 상대를 구원하겠다는 원대한 꿈은 가진 거 없는 사람이 로또 1등 당첨되면 뭐해야지 하는 계획처럼 허무맹랑한 드라마였던 셈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 드라마의 끝은 일장춘몽이 아닌 원테이크(one-take) 방식의 촬영으로 주인공이 죽어야 역할이 끝난다는데 있다. 도중에 계약을 파기하고 역할을 중도 포기한 인생의 선배들은 어서 너도 이 대열에 합류하라며 손짓한다. 텔레마케터의 끊이지 않는 멘트처럼 달콤하고 솔깃하다. 그러나 나는 쌍둥이 아이들이 눈에 밟혀 제2의 인생 계약서에 선뜻 서명하지 못하고 있다.


나를 닮지 않았다면 이런 고민도 안 했을 텐데 아들은 나를 너무 많이 닮아있다. 사랑스럽게도 말이다.


얼마 전 첫째 누나가 너도 이제 건강 챙길 나이라며 비타민 등 약을 보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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