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의 잠자리 횟수에 집착하는 남편의 사연을 보았다. 이혼을 염두에 두고 서로 원하는 방향을 조율하는 시간에도 남편은 아내와의 섹스 횟수에 집착하고 있었다.
'생각이 참 단순하네'
재산의 절반을 내주어도 상관없으니 일정 횟수의 섹스만 보장되면 이혼하지 않겠다는 주장이 참으로 직관적이게 느껴졌다. 돌이켜보니 나 역시 유사한 판단 프로세스로 결혼 하지 않았던가. 아내의 경제력이나 대화 방법, 음주나 흡연 등 여러 판단 요소들을 무시한채 한 두가지 마음에 드는 것을 고평가하지 않았었나. 그러한 단순한 결정으로인해 10년 동안 이혼 생각에 괴로워하지 않았던가.
아이 둘이 한꺼번에 태어나면서 이혼이란 단어조차 망각하며 살았다. 안아주지 않으면 잠들지 않겠다는 첫째 아이는 지금도 어린이집 친구들과 선생님을 꼬옥 안아주고 인사하며 다음에 다시 만나자 약속하며 사라진다. 정이 많은 친구다. 욕심도 많고 정도 많다. 심지어 먹는 양도 성인인 나보다 많이 먹는다. 이미 면 요리는 두 세살 무렵부터 아빠보다 많이 먹었다. 그래서일까? 아직 미취학임에도 어부바로 10m도 못가겠다. 20대 때 여사친을 업고 대학 정문의 내리막 길을 내려가던 때가 생각났다. 지금의 아내를 업고 10m는 갈 수 있을까? 나는 나이가 들고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지 않기로 했다. 그런 패기는 군 복무 전 후로 사라졌다.
딸 아이는 아직 팔, 다리의 길이가 짧아 아빠의 등에 매달리는 법을 모르는 것일까? 신생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슴으로 안아주고있는데 바닥을 향해 주르륵 흘러내렸다. 손에서 아이가 빠져나가려는 찰라 아이를 다시 잡아 공중에 띄워 꼬옥 안아주었다. 아마도 딸은 그 때의 기억은 망각하고 있겠지만 아빠는 그 순간 내가 미꾸라지처럼 미끄덩한 존재를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에도 딸은 미꾸라지처럼 아빠의 꾸지람을 잘도 빠져나갔다.
아들은 첫째에 비해 악력의 절대적인 수치는 낮았지만 살려는 의지가 강했다. 인큐베이터 속에 꼬옥 움켜진 주먹을 보고 아빠는 느낄 수 있었다.
'이 녀석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힘을 주고 있지 않으면 엄마의 뱃속에서 스르륵 미끄러져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직감했구나.'
첫째는 뱃속 공간이 비좁다고 발로 뻥뻥 찼을 것이고 둘째는 입이 짧아 미숙아로 태어났다. 아빠 눈엔 둘째가 매 번 측은하고 자랑스럽다. 반면 첫째는 참으로 아내스럽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아들이 나 어릴적 모습과 많이 닮았다고 자랑해 왔는데
내 자신의 과거 모습을 망각하며 지냈나보다. 여섯 살 아들과 다섯 살 아빠는 그리 닮아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