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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지 Aug 20. 2024

번쩍

내가 사랑했던 건 대상 자체가 아닌 대상이 지닌 젊음의 생기였을까? 그토록 오랜 시간 마음에 담았던 사람에게도 실망하고, 예전의 감정 또한 살아나지 않았다. 40년을 넘기니 나 또한 젊은 시절의 생기를 잃었다. 삶에 치이고 돈에 굶주렸다. 각박하게 지내다보니 그 게 기본 상태가 되어버렸다. 사랑도 애정도 내면에 에너지가 있어야 나눌 수 있을텐데 지금은 텅 비어버린 느낌이다. 얼굴의 유분은 화수분처럼 나오는데 지갑의 지폐는 자폐처럼 타인과 교류가 없다.

이런 마음의 사막화로 보내는 50대는 어떨까? 결국 결핍이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 아니던가. 키우던 자녀도 언젠간 내 키를 훌쩍 넘어 집을 박차고 나가겠지......

"아빠 눈 떠!"

분명 난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있었는데 딸 아이는 병상에 누운 아빠에게 다그치듯 말했다.

"보고 잘 배워둬. 언젠간 네가 아빠 머리 감겨줘야할 날이 올 거야."

눈을 뜨게 만드는 아이들이 부모의 머리를 감겨줄 날을 상상해 보았다. 눈을 감은 그 짧은 시간동안 더 늙어버린 걸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선잠에 아이의 이름도 사라져버릴지 모른다. 지금을 기억하렴. 아빠와 나눈 대화는 기억하지 못해도 그 날의 향기나 감정은 남아있을지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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