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가족에서 나는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아들을 낳지 못한다고 구박받던 어머니의 소천을 기점으로 가족의 틀이 깨졌다. 이삿짐을 정리하다 나의 첫 가족들과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삼촌이라 불리던 시간이 좋았다. 양육의 책임은 없고 어린 조카들과 함께 웃고 즐기기 바빴다. 그들 중 절반은 20대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아이가 부르는 간들어지는 목소리의 "삼춘~"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어떤 아내를 만날지 알 수 없던 시절의 불확실함을 지나 두 번째 가족이 생겼다. 나는 남편에서 아빠로 레벨업 했다. 인생 난이도 또한 상승했다. 아내의 퇴근 시간에 맞춰 가족사진을 서랍 안 깊숙히 숨겨두었다. 그리움도 함께 넣었다. 10년 전 가족사진에 아내는 없다. 아내를 만나기 전 나는 행복한 원주민이었다. 결혼의 신대륙이 발견되자 아내와 아이들에게 쇼파와 TV 리모컨을 빼앗겼다. 봄이와도 내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누울 자리 잃은 나의 자랑거리는 아들과의 결속력이다. 독립투사 딸과 달리 아들은 가끔 내 편이 되어준다.
두 번째 가족을 가족으로 인정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듯 하다. 아마도 손주가 태어나도 첫 번째 가족의 지위는 넘을 수 없을 것이다. 예수처럼 다 이루었다고 속삭이는 날, 왼 팔에는 딸이 찌른 못자국이 오른 팔엔 아들이 겨눈 창의 성흔이 남아있지 않도록 행복하게 지내야겠다. 나이가 들어 아이들과 함께 아이유 디너쇼를 보러 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