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이민과 닮아있다. 정든 가족의 울타리를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아내의 언행이 외국어처럼 들린다. 자국 아내는 남편에게 정답을 강요한다. 특정 물음에 원하는 대답이 있고 그 대답에 점수가 매겨진다. 조루인 남편의 "오늘 어땠어?" 질문만큼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이다. 결혼 생활에 피난처인 한인타운이 필요했다.
잠은 돈처럼 늘 부족하다. 어린이집 하원 후 놀이터 의자에 앉아 끔벅끔벅 졸았다. 아무런 신체활동도 하지 않으면 기면증처럼 머리를 떨궜다. 전도하는 이들이 놀이터로 다가온다. 아이들에게 생수와 건빵을 나누어준다.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먹고 마신다. 부족했던 잠이 사라졌다. 불편한 기적이다. 아내와의 잠자리 또한 늘 부족하다. 결혼 후 홍해가 갈라지듯 멀어진 사이가 미간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더 이상 아내의 오늘이 궁금하지 않다.
아이들은 존재 자체가 선물이다. 어린이집 등원 때 만난 학습지 직원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장난감 반지를 나누어주었다. 전화 벨이 울린다. 인터넷 변경 시 최대 몇 십 만원의 현금 지원을 통화 종료 버튼과 함께 거절했다. 내 존재도 영업직원들에게 커다란 선물인가보다. 대출, 여론조사, 인터넷 가입 이렇게 세 곳에서 내 안부를 묻는다. 사회복지사처럼 기계적인 음성으로 나를 유혹한다. 문자로는 외국에 사는 친구가 한국에 오겠다고 방문 목적을 알린다. 나는 아직 아내의 패턴을 해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