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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지 Sep 15. 2024

안녕

살아야 가치있다. 죽은 자는 쉽게 잊혀진다. 가족의 경계를 넘어서면 잊혀짐의 속도도 빠르다. 서로를 미워하는 부부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부부도 자녀에겐 한없이 애틋하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가 다음 세대를 이끌어간다. 전 세대는 그렇게 소리 소문없이 사라진다. 홀로 살다 조용히 사라지길 바랐었다. 생의 의미를 찾기 두려웠다.

어린이집에서 놀던 아이들은 간식으로 막걸리라도 마셨는지 한껏 들떠 있었다. 술자리에서는 안 취한 사람이 비정상이다. 기분이 정상에 도달한 아이들은 아빠를 앞질러 뛰어갔다. 참새처럼 재잘대고 강아지처럼 밖을 원한다. 보고만 있어도 기쁘지만 진이 빠진다. 아빠 몰래 성장한 아이들이 이제는 아기 티가 안난다. 똥강아지라 불리던 친구들은 어느새 개가 되어버렸다.

아이는 지금 이 시기의 기억이 소리 소문없이 사라질 것이다. 기억력이 좋은 친구들은 그 날의 온도나 습도, 냄새나 담벼락의 질감도 기억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유년 시절의 기억은 꿈처럼 희미하다. 나 역시 부분만 남아있다. 놀이터의 위치, 하수도 멘홀 뚜껑, 오락실의 소음, 밤의 고요함, 동네 형의 사고사와 학교 앞에서 구입한 병아리를 잡아먹은 키우던 고양이의 태평함까지......

어머니께서도 췌장암으로 돌아가시기 전 푸른 잔디를 이야기하셨다.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날의 풍경을 상상했다. 따뜻했거나 맑은 어느 날 시골에서 살다온 어머니의 20대 시절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내가 없던 시절은 컬러로 새겨지지 않은 흑백의 오래된 사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내일은 내일이 잊혀지지 않게 아이들 사진을 찍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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