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인 거 같아. 일주일동안 무슨 말들을 내뱉었지? 긍정적 언어와 부정적 언어, 질문, 타인을 무시하거나 상처를 주는 말은 없었을까? 상처의 대부분은 아내였겠지.
아내는 아침부터 짜증이 난 상태였어. 강아지가 안방 화장실에 배변을 보았는데 내게 왜 문을 열어두었냐고 질책하더라고. 자고있던 난 어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어. 플라스틱 고무로 문고리를 걸어두어도 강아지가 문을 밀치면 열린다는 것을 말이야.
아내는 딸 아이의 머리를 묶어주었어. 평소엔 바쁘게 출근했는데 어린이집에서 한복을 입고 오라했고 거기에 맞춰 머리를 묶어주더라고.
"아이 한복도 좀 다려주고 했어야지. 당신 아버님은 당신 30대에도 옷 다려주셨는데 당신은 왜 아이들을 부모없는 자식처럼 키워?"
딸의 머리를 늘 산발로 다니게 놔둔 나를 없는 사람으로 여기더라고. 순간 홍명보 감독이 떠올랐어. 나는 나를 버렸다. 영원한 리베로 책도 구입했었는데 지금은 그 책을 버렸어. 이사다니면서 소장 가치가 없더라고. 한참을 아내가 한 말을 곱씹고 있을 무렵 출근한 아내에게 전화가 왔어. 버스 시간 놓쳐서 지각할 거 같다고 자기 좀 차로 데려다 달라네. 아직 어린이집 보낼 준비가 안된 아이들은 어쩌냐고 묻자 집에 TV 보게 하고 혼자 나오라는 거야. 근데 또 아이들은 아빠랑 같이 나가고 싶었나봐. 알아서 한복을 입기 시작하더라고. 아빠 차를 탈 일이 흔하지 않거든. 한 달에 한 번 정도야. 아빠는 차를 버렸거든. 지하 주차장 한 구석에. 1년간 육아휴직을 신청해서 딱히 차를 쓸 일이 없었어.
아이들은 신나 있었어. 반면 아내는 빡쳐있었어. 항상 그렇듯 어떠한 고마움도 표시하지 않더라고. 일 년에 한 두 번 친정인 전라도에 다녀와도 아내는 운전한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지 않아. 부정적인 언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야. 결혼 후 성격이 더욱 부정적으로 바뀌었어. 아마도 내 탓이겠지. 늘 내 잘못이라고 사과받고 싶어했으니까.
내 삶도 책임지지 못하는 존재가 누굴 가르친다고 훈수를 두겠어. 겁이 없으니 젊음이고 아이를 양육하겠지. 나이 들어 아이를 키운다면 아이가 어른을 가르치려들 거야. 곁에서 지켜본 아이들은 나이든 이들에게는 큰 흥미를 보이지 않더라고. 생기가 없어서인지, 자신과 결이 맞지 않는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는 것 같아. 난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좀 무서워했던 거 같아. 친근한 존재처럼 보이지 않았어. 무너져 내리는 피부처럼 나와 다른 인종이라 생각했어. 아이들은 아직 2100년을 경험하고싶지 않은 모양이야.
아내의 지각 출근길은 한복을 입은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모험이었어. 아들은 기억하더라고. 포켓몬 띠부띠부씰 당근 거래한 약속의 장소에 착지한 엄마가 뛰어가는 모습을. 딸 아이는 차에서 힘껏 소리지르며 엄마에게 인사했지만 엄마는 듣지 않았어. 아줌마처럼 보일까봐. 학생처럼 뛰어가더라고. 교문은 늘 멀리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