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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지 Oct 11. 2024

질문

사랑없이 결혼할 수 있을까? '이 사람 아니면 안될 거 같아' 따위를 맹신하진 않았다. 그저 그 나이 대에 엄습하는 특유의 불안감에 휩싸여 생명보험 가입하듯 서둘렀을 뿐이다. 납입형태는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는 것이었다. 납입을 해야 삽입이 가능하다. 사망 시 아내에게 보험금이 지급되니 보험과 결혼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남자에게 삽입없는 사랑이 가능한가? 십 대엔 가능, 이십 대부터 삼십 대까지는 불가능, 사십 대엔 다시 가능할 것 같다. 사십 대엔 십 대처럼 뇌가 순수해지는 걸까? 만사가 귀찮은 거겠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힘겨운 시기이다. 결혼 후 만나던 친구만 드문드문 보고 있다. 배우자에게 기대어 살고싶은 시기가 도래했다. '사람 인'에 가까워질수록 발기 각이 풀처럼 드러눕는다. 묘지에 누워보자. 죽음은 땅과의 삽입이다. 빼낼 기력이 있어야 생존이 가능하다. 드나들어야 생명이 탄생한다. 무한정 반복하겠다 싶겠지만 힘은 유한하다. 사랑도 행복도 순간이다. 수분없는 화분은 마르고 생명이 자라지 않는다. 인간관계에 필요한 덕목은 충분한 양의 수분이다. 가정이란 화분 속 아이들이 수분처럼 작용한다. 부모는 양육을 위해 합심한다. 자녀들이 곁을 떠나는 겨울이 오면 우리 부부는 함께 지낼 수 있을까? 아내는 전문대 중퇴를 했다. 결혼 생활만큼은 꼭 졸업시켜주고 싶다. 학사모 대신 수의를 입을지도 모른다. 먼저 떠나는 건 결혼생활의 중퇴다. 어쩌다가 이혼 앞에 임전무퇴 정신을 발휘하고 있는가? 괜한 힘의 낭비다.


얼마나 사소한 일에 목을 메고 살아가는가? 멀리서 바라보면 불필요한 힘 낭비다. 장소와 시간만 멀리 떨어지면 별 것도 아닌 일에 힘겨워 했음을 느낀다. 매 순간 이불이 필요하다. 함께 덮던 이불은 추위 앞에 냉혹하다. 서로를 끌어안던 팔은 이불을 움켜쥔다. 상대방의 이불이 떠오른다. 냉기가 방문한다. 서로의 관계 역시 냉랭해진다.







내가 아이들 등하원을 책임지고부터 아내의 격노가 줄어들었다. 아내는 아이 둘을 낳는데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지금은 각자의 이불을 덮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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