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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지 Oct 12. 2024

수양

어린이집 하원 후 놀이터에 들렀다. 새로 개방한 놀이터 미끄럼틀엔 흙먼지가 쌓여있다. 내려올때마다 갈색으로 변하는 엉덩이, 모든 어린이들이 콜럼버스처럼 들떠있다. 기부체납으로 조성된 공원은 10월부터 낮 5시까지 이용 가능하다고 적혀있다. 5분을 남긴 5시, 집 앞 놀이터로 향한다. 딸은 아빠가 킥보드 손잡이를 잡고 끌어 당겨야 움직인다. 한 발짝의 힘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노는 것과 먹는 것에 집중하겠다는 야심, 그것이 1분 차이 동생보다 7kg이나 더 나가는 몸으로 성장시켰다. 앞니가 빠진 딸과 아들은 동그란 철판에 앉아 밀어달라고 소리친다. 주변에서 놀고있던 세 네살 아이들도 탑승한다. 여섯 살이 돌리는 원심력에 락스타의 샤우팅을 뽐낸다.

"무서워! 멈춰. 꺄~~~~~~~"

놀이터 곳곳에 포진한 어머니들이 소리의 진앙지를 바라본다. 겁에 질려 엄마를 찾는 아이, 더 빠른 속도로 회전하길 바라는 두 남매는 어쩔 줄 몰라한다. 이맘때 아이들은 정치꾼이다. 서로 탓하기 바쁘다. 갑자기 소리를 질러 시끄러웠다며 나쁜 아이 취급하는 딸에게 아빠는 아이가 너무 빨라 무서워서 그런 거라 일러주었다. 이제부터 속도를 제어하는 건 아빠의 몫이다. 버스 기사처럼 승객들을 태운다. 몇 키로로 달릴지 물어보니 울먹거리던 아이가 40키로를 외친다. 손가락은 두 개만 편다. 인지부조화 버스가 달린다.

"무서우면 '삐'하고 벨 눌러. 그럼 멈출게"

두 세살 여자 아이가 재밌어 보였는지 뒤늦게 탑승한다. 계속 '삐'만 외치는 탓에 LP 철판 버스는 5키로의 속도로 달린다. 여섯 살 남매는 하품이 나온다. 아빠는 어린 아이도 무섭지 않게 함께 어울려 놀 수 있기를 바랐다. 놀이터에 오르는 언덕에서 만난 송충이는 영문도 모른채 어린아이의 장난에 짓밟혔다. 아빠는 아이가 약자를 대하는 방식부터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곧 강자인 엄마가 퇴근할 시간이다. 야간 통행금지 시간이 다가오듯 바쁘게 발걸음을 옮긴다. 아내는 수양대군 입장하듯 기개있는 발걸음으로 중문을 열었다. 아이들에게 엄마 오면 TV 끄고 학습지 풀고 있으라고 말해두었건만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중문까지 걸어오는 아내는 이정재처럼 느리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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