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보기 싫은 사회다.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전진을 위한 후퇴 따위도 패배로 여긴다. 인간관계 역시 점점 잔인해지고 있다. 사기공화국이란 오명, 이익을 위해 거짓을 이용하고 그것을 정당하다 합리화한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따지고들면 첫 단추부터 어긋나있다.
성별 갈등을 겪으며 자랐지만 우리 세대 남자들은 별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반면 우리 아랫 세대는 그렇지 않았다. 선배 세대의 불합리성을 인식하고 본인들은 절대 손해보고 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다. 마통론, 도축론 등의 이론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그제서야 우리 세대는 자신이 받았던 멸시를 주의깊게 확신하였다.
사람은 영리할수록 손해를 싫어한다. 아랫 세대에게 결혼과 임신은 일종의 손해보는 행위이다. '너 다시는 예전 몸으로 돌아갈 수 없어' '아이 낳으면 너만 독박육아에 시달릴 거야' '나니까 너랑 결혼 해주는 거야'
부모의 걱정과 손해로 아이가 탄생한다. 우매한 이들은 아리송하다. 남편이 대체 무슨 손해를 본다는 것인지를 말이다. 남편들은 자녀 양육을 위해 홍명보처럼 살기로 다짐한다. 나를 버려야만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믿는다. 아내들은 생각한다. '남편을 어디에 버릴까' 남자의 생각회로는 주로 일을 열심히 해 돈을 많이 벌어다주자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결론으로 인해 아내들이 독박육아라는 손해를 입게 된다. 사업 확장, 코인, 주식 등 리스크가 있는 쪽으로 결론이 도출된 이들도 있다. 나 역시 그러한 욕심이 들기도 했다.
내가 손해를 보면 다른 누군가는 이득을 챙길 수 있다. 잃지 않고 얻을 상상만 하는 건 도박에 가깝다. 아내에게 말했다. 지금 현재 환율에 대해, 올 하반기 집 주변 대로변의 문 닫은 점포 수에 대해 말이다. 생활 패턴을 달리하지 않고 여유로운척 살다간 아이들 손에 그 무엇도 쥐어질 수 없게 된다. 시장에서 아이들 신발을 고르다 빈손으로 돌아왔다. 예약한 렌트 차량을 취소하고, 계획했던 일정을 변경했다. 택시비는 아까웠지만 지하철 비용은 아깝지 않았다. 환승역의 먹을 거리 판매하는 곳에 시선은 두었지만 발걸음을 멈추진 않았다. 주머니 사정이 안쓰러웠다. 아이가 민망하다는 말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부끄러운 상태라 알려주었다. 무엇에 그리 부끄러웠을까. 뜻 모를 말이 오갔나 보다. 남편은 경제적 여유가 없음에 부끄러워 일에 집착하는 것이었다. 그런 남편의 사고회로에 아내는 독박육아라 외치며 손해를 주장했다. 남편의 사소한 부탁을 무시하던 아내가 자신을 여태 사랑하냐 물었다.
"한시적으로"
아내는 트림나오듯 거침없이 웃었다. 나는 한시적이었다는 과거형 표현을 쓰지 않았다. 너무 슬픈 대답일까봐 현재로 대답했다. 미래에도 아내일지 모르는 여자 분께서는 시제를 추궁하지 않으셨다. 본인만 손해일지 모를 의문이기에 한숨보단 웃음이 경제적이라 판단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