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립

by 이백지

'난 차라리 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똥 오줌 못 가리는 갓난 아이와 치매 어르신을 동시에 돌봐야 하는 일처럼 빠듯하다. 동물병원 진료 후 집으로 돌아온 개는 세 번을 연달아 토했다. 바닥을 치우고 돌아서니 다른 개 한 마리가 바닥에 똥을 쌌다. 입과 항문에서 나온 것들을 정리하고나니 식어버린 국과 반찬이 나를 반긴다. 그들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어제 배달로 번 돈보다 많은 돈을 강아지 병원비로 지출했네'

1월 마지막 날 슬립을 경험했다. 과속방지턱을 넘자 오토바이가 시원하게 미끄러졌다. 충분히 서행했지만 앞바퀴와 뒷바퀴 모두 직진성을 잃었고 전면과 후면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고자 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눈이 많이 오는 날은 위험하니까 일하러 나가지 말라는 아내의 조언 시점으로 돌아가고싶었다. 지면에 쇳소리가 나며 오토바이가 멈췄다. 넘어진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날 밤 나는 미끄러지듯 깊은 잠에 들었다. 분주히 이동하는 전기 자전거 라이더들과 콜 창을 바라보며 대기 중인 오토바이 라이더가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전업주부와 부업 라이더의 생활이 만족스러웠다. 보름 후면 육아휴직이 끝난다. 아이가 둘이라 아직 1년을 더 쉴 수 있다.

삶이 멈추면 걱정도 사라진다. 존재가 사라지면 그가 지닌 걱정도 해소된다. 결국 네가 죽는다해도 내 걱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불안은 오로지 살아있는 자의 몫이다. 불행하기로 마음 먹기보다 어떻게 해서든 지친 나를 일으켜 주어진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다행히 오토바이나 삶이 내 몸을 짓누르지 않았다. 핸들을 놓고 나서야 노면 전체가 얼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면의 경사대로 오토바이가 흐른 거였다. 낮은 쪽으로 잡아끄는 힘, 삶도 이와 닮아있다. 경제력이 낮은 쪽으로 집안이 기운다. 상승은 어렵고 하강은 쉽다. 일하기는 힘들고 소비는 쉽다. 버튼 몇 번만 누르면 집 앞에 물건이 도착한다. 살기 위해 벌고 죽지 않으려 애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핸들을 놓아야지만 내가 살 수 있다고 나에게 명령한다. 살아있는 건 죽은 자에겐 기적같은 일이다. 누군가 집에서 스마트폰 버튼을 눌러주어 나는 음식을 들고 그 집 앞의 벨을 누를 수 있다. 집 안과 밖 모두 살아있다. 그저 차갑게 식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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