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올바름의 위태로움
도덕성과 즉흥성의 충돌
아이들이 휘적휘적 씻어 지은 밥이 더 맛있었다.
손에 묻은 침과 콧물, 각종 지저분한 요소가 첨가되었나? 때론 잘하려는 의욕보다 그냥 대충 쓱~이 더 좋은 결과물을 탄생시킨다. 어쩌면 아이들이 생산 과정에 참여해 이야기란 맛이 추가 되어서인지 모를 일이다.
아빠가 하는 모든 걸 따라해보려 한다.
빵집에 들어가기 전, 베이글 빵을 사야지 생각했지만 내 손에 들려있던 건 가성비 좋은 맘모스 빵이었다. 가끔 의식의 흐름대로 살고 있긴 한데 어쩌다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을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내게 즉흥적으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되고 있다.
나와 달리 아내와 딸은 도덕성이 높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선택이 바르면 결과 역시 같은 결과값이 나와야 정상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올바름의 기준에서 남편과 아빠는 어딘가 좀 모자라 보이는 사람이다. 가끔 도덕성과 즉흥성이 충돌한다. 올바름을 상대에게 요구해서이다.
현실과 이상이 다르듯 아빠는 엄마를 선택했다. 이것 역시 즉흥적이었던 걸까?최근 즉흥적이지 않은 선택은 뭐였을까 되물어 보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고심을 해도 놓치는 부분이 있고,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분위기 탓도 있다. 대한민국이 나만 남겨두고 미래를 향해 떠나는데 어찌 눈 앞의 버스를 타지 않을 수 있던가. 생각은 버스가 출발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이겠지. 어쩌면 나에게 중요한 건 목적지가 아닌 그냥 차분히 앉아 생각할 시간이다. 어디까지 가는지 주머니에 돈은 얼마나 있는지 그 돈을 자신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지 따위를 알고싶어 하는 이에게 나만큼 좋은 먹이감도 없다.
유니가 배변패드를 깔았지만 오른쪽이 접혀있다.
수 년째 배변패드 위에 오줌을 싸라고 강요해도 흑임자 씨는 몸만 배변패드 위에 있을뿐 뒷다리는 밖에 있다. 생각과 의지가 다른 대표적인 케이스다. 마치 주인의 올바름이란 배변패드의 틀을 개무시하듯 자연스럽게 본견의 욕구를 해소한다. 목적지를 벗어난 소변을 볼때마다 몸에 길고 긴 무언가를 장착한 이들의 격정적 욕구가 떠오른다. 오늘도 무사히 해소되었는가?
올바름은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사소한 뒤틀림에도 마음을 어지럽힌다. 흐트러짐의 반대편에 올바름이란 위태로움이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