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행복한 항복

내 별풍선을 너에게 줄게

by 이백지

아이스크림 체크 원

마이크로폰 체크 투

애미야 흥 좀 다오~ㄴ


시간은 쌓아올린 결과물에 가깝다. 훗날 중력으로 와르르 무너질 행복



나는 내 모습과 닮은 아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꼭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뭐라 조언해 주고 싶어도 그 조언으로 인해 삶의 방향이 바뀔지 몰라 조심스럽다. 아마도 더 미래의 내가 더 과거의 나에게 조언을 했다면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라 했겠지?


인생의 가지 않은 길 결혼과 육아, 그리고 비혼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 좋긴 한데 가끔은 이 게 내 인생을 쏟아부을 만큼 의미 있는 일인지는 의문이 든다. 어릴 적 오락실에서 끝판까지 가보려 동전을 넣는 행위처럼 무한정 자원을 쏟아붓고 있기는 한데 끝판에 도달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그저 프로그래밍된 틀 안에서 승부욕 또는 성욕에 휩싸여 동전을 여러 번 넣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다.


딸의 기행에 하마터면 아껴둔 별풍선을 쏠뻔했다.



물론 아이들이 주는 원초적인 행복을 평가절하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자신의 삶이 위태로워질 만큼 대를 잇는 게 중요한 가치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든다.


우선 내가 끝까지 아이 갖기를 망설였던 건 대한민국 사회가 결코 살아가기 만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에서 낳고 자라 성인이 되기까지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당장 아이란 존재는 아파트에서 층간 소음을 유발하는 불쾌한 이웃일 수 있다.


그렇다고 아파트라는 편리함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10년 넘게 주택에 살면서 아랫집과 차량을 앞뒤로 대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주차의 불편함 때문에 자연스레 아파트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면 아무리 맛있는 식당도 주차가 불가능하면 찾기가 꺼려진다. 점점 편리함에 길들여지는 것처럼 중년이 청년보다 살이 찌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걸 불편해하고 생체 에너지 대사량 소비도 예전처럼 활발하지 않다.


아이라는 원초적 행복은 맛집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맛을 탐닉하는 것처럼 가치 있는 일일지 몰라도 집 내부의 인구밀도에 따라 집의 평수를 늘려야 하는 것처럼 힘겨운 벌이의 행진을 요구한다. 사실 그 행복의 가치가 의미 있는 생의 작업인지는 현재로는 알기 힘들고 보험처럼 나중을 위한 요소도 있다. 내가 당장 힘없고 늙었을 때 누군가 찾아와 주고 생의 마지막을 정리해줄 누군가의 존재야말로 힘들게 키운 보람의 일부이지 않을까?


아빠라는 타이틀의 무게는 어좁이인 내게 꽤나 무거운 행복이다. 그래, 아빤 너희들에게 언제나 항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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