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출근해?= 아빠 살려줘

아내와 아이의 '아이고 나 죽네' 소리

by 이백지

"아빠, 내일 츌근해?"

퇴근과 동시에 현관문 앞으로 달려와 출근 여부를 묻는 걸 보면 아내가 '아빠 내일 출근 안 하니까 아빠랑 신나게 놀자'라고 희망을 주고 본인은 www의 세계로 칩거에 들어간 모양이다.


아내의 www 세계엔 먹방의 대리만족과 실제 배달로 이어지는 삶의 경험, 게임 방송, 무협 판타지 소설, 누가 누가 진상인지 험담 하기 바쁜 사연 읽어주는 채널, 모바일 게임 등의 카테고리가 있다. 온라인 게임과 공무원 준비는 카테고리에서 빠지게 되어 컴퓨터 책상에 그대로 남아있다. 마이크 기능이 있는 헤드셋과 공무원 시험 준비 서적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프로게이머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자아정체성을 의심받기 좋다.


나 역시 모바일 게임에 4~5년 정도 빠져있었다. 연합장이 되어달란 요청도 있었지만 육아에 지쳐 게임도 접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게임 캐릭터에 옷을 입혀도 내가 춥지 않은 시기였으나 쌍둥이가 태어나면서부터 현질은 사치가 되어버렸다.


기저귀와 분유, 분유도 특수분유를 먹였다. 첫째는 2kg을 200g 넘겨 무사통과였지만 둘째는 2kg이 되지 않아 신생아 중환자실로 향했다. 태어나자마자 플라스틱 관짝에 들어가 여러 개의 전깃줄을 몸에 붙이고 상태를 파악해야 하는 불쌍함이 아직도 내 맘 속에 남아있다. 인큐인지 니큐인지 그 단어의 틈을 벗어나지 못하고 힘겹게 울어대는 둘째의 갈라진 울음소리는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서려있었다. 자식이 아픈 건 살아생전 자주 보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예수의 성흔에 절대자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이 안 간다.


특수분유의 맛은 일반분유처럼 맛있지가 않다. 분유+된장처럼 걸쭉한 맛이 똥인지 된장인지의 유래가 여기서 나왔나 의심이 될 정도이다. 다행스럽게 아기들은 캐비어나 랍스터를 좋아하지 않는다. 천만다행이다. 부모의 재정상태를 고려한 입맛은 언어가 뚜렷해질 무렵 즈음 입맛과 채널의 취향이 생긴다.


이 시기의 자녀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 음식은 무엇이고 어떤 음식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지를 꼼꼼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3월에 입학하게 될 어린이집 설문지에 적기 위해서다. 두 번째로 어린이집을 옮기게 되었다. 이곳에서 친해진 시우라는 아이는 어디로 가게 될까?


"시우, 아니 아빠!"


라고 딸이 말해 아빠가 서운해서 어린이집 옮기는 거 아니라고 말해주어야 하는데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전에 다녔던 가정 어린이집도 폐업한 상태다. 점점 동네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웃음소리가 줄어들고 있다. 노 키즈 존이 한 국가 전체로 전이되는 듯하다.


지금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 역시 충원인원 부족으로 경영난에 봉착해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전환된다고 한다.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은 평생 어린이집 사업을 해오셨는데 근심이 많으신지 몸무게가 많이 빠지셨다. 아내는 2월 중순부터 어린이집 봄방학이 시작된다는 공지에 살려 달라 말한다. 아내는 원장 선생님만큼 살이 빠질 거 같지는 않다. 생존의 살려달라는 외침이 아닌 그냥 죽는소리쯤으로 여겨진다. 당장 설 연휴 5일도 버티기 힘들다며 하루는 오빠네 집에 혼자 다녀오겠다는 걸로 봐서는 말이다.


아인이 엄마는 아이와 함께 출근한다. 이 집도 우리 집처럼 아이를 봐주거나 하원을 도와줄 대체인력이 없다. 남편과 한 직장에 다녀 한쪽 자리를 아인이에게 내어주고 업무에 집중하려 하니 이것저것 달라하고 아이 신경 쓰기 바빠 전전긍긍이다. 아내 역시 남편이 퇴근해야 자신이 육아에서 해방된다며 어린이집 하원을 도운 이후부터 좌불안석이다. 자리가 편치 앉아 혼수로 준비한 소파도 바꾸었다. 아내가 주로 앉는 자리의 쿠셔닝, 서스펜션이 내려앉았고, 따님께서 가죽을 손톱으로 갈기갈기 찢어놔서 바꾼 것이다. 나는 앙칼지고 무거운 고양이 모녀를 모신 집사였을까?


설 연휴를 남편과 함께 보낼 생각에 아내는 부쩍 예민해진 상태다. 한가로운 자신의 여가 시간에 봄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주거를 침입해 난동을 부릴까 봐 노심초사한다. 마침 아이들이 가습기 전원 버튼을 반복해서 눌러댔고 판관 포청천으로 빙의한 아내 앞에 사면초가로 붙들려 죄명을 읊조린다. 서로 네가 그랬다며 죄인의 트로피를 마다하는 쌍둥이의 우애에 아내는 확신은 가지만 거짓말하는 게 더 못된 버릇이라며 묻고 더블로 혼낸다.


아빠는 브라질 오렌지 농장을 찾은 영화 변호인의 송강호처럼 아이들을 변호하며 외친다.


"내가 그랬을 수도 있어"


예상치 못한 남편의 '따봉' 고백에 아내는 '죄 없는 자만 아이들에게 돌을 던지라'는 예수의 언행이 떠올랐던 걸까?


"내가 가습기 물을 채우기 위해 버튼을 눌러 전원을 끈 상태로 '뚜껑'을 열어 물을 넣었던 거 같아"


나는 일단 전원 버튼을 껐던 게 나였던 거 같아 이실직고했다.


"아니야 딸깍 딸깍 소리가 여러 번 났어"


아내는 거짓의 형벌을 위해 더 큰 돌을 찾고 있었다. 판관 포청천처럼 어둡던 아내의 낯빛은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신구 선생님처럼 그늘진 모습이었다. 4주 동안 범인이 밝혀지지 않으면 맴매의 칼날이 남매의 연을 위협할지도 모른다. 엄마는 알면서 모르는 척할 뿐이고 아빠는 모르는 척 모를 뿐이다. 여전히 아는 것은 힘이자 권력이지만 나는 아는 게 없다. 힘없는 집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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