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아이들이랑 노는 거 보면 정신병 생길 거 같아"
[아이들 통제가 안 되는 남편은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에 제제를 가하지 않는다. 남편은 아이들이 충분히 뛰어놀고 실수하고 반성하도록 방관하는 듯 보이며, 반말을 해도 훈계하지 않는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존대하지 않는데 아이들이 따라 할 일 없다는 태도이다.]
아내는 가끔 분노에 휩싸여 아이들에게 소리 지른다.
"저 쌍놈의 새끼들"
쌍둥이니까 사실 적시에 해당한다.
나에겐 조카가 넷 있다. 우연처럼 조카들과 자식들 간 이름에 모두 'ㄴ'을 집어넣었다. 결혼을 가장 먼저 한 둘째 누나네 아이들이 이름에 빈이 들어간 삼 남매, 첫째 누나 아이가 준으로 외동, 우리 집이 온&윤으로 이름에 모두 니은이 들어있다. 첫째 조카는 02년생으로 삼촌인 나와 19살 차이가 나고 오니유니는 첫째 조카와 17살 차이가 난다. 삼촌 뻘인 셈이다.
첫째 조카와 둘째 조카는 삼촌인 나와 어릴 적부터 좋은 친구관계였다. 숙모가 된 아내는 조카들이 삼촌에게 반말을 한다며 예의 없어 하지만 그냥 집안 분위기가 그런 편이다. 누나나 나도 아버지를 편하게 생각하고 반말과 존대를 섞어서 하고, 조카들도 삼촌이나 이모부를 그렇게 대한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어른이 되어 만나는 삶에 누가 위이고 아래이고 존대하고 꼰대 하고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아내는 위계질서를 중시 여긴다. 본인만 제외하고는 말이다. 결혼 후 삼촌은 아내란 친구를 위해 헌신하는 구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무렵 즈음부터 조카들과는 대화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조카들은 숙모의 요청으로 입에 붙지 않는 존대를 하면서부터 말끝을 흐리거나 딱히 뭘 물어보지 않는 이상 묻지 않았다. 반말은 실수는 있어도 말의 빈도를 줄이지 않지만 존대는 말실수를 줄이는 대신 말의 횟수를 줄게 만든다.
손님이 찾아오는 횟수가 줄어들면 음식점이었던 자리는 무인으로 운영되는 놀이공원이 된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조카의 어린 시절은 주말마다 천사를 입양해 키운 것처럼 따스한 추억이다. 자녀라는 천사를 집에 모셔오니 예상대로 쉽지 않다. 동네에 소문난 사고뭉치였던 나는 내 자녀 역시 나와 유사한 행보를 보일 것이라 추측했고 그 예상은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단지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녀 덜 유명해서 그렇지 풍겨지는 기운은 아빠의 어린 시절 모습과 유사하다.
나는 바로 옆집에 살던 금성전기 집 아들 종훈이와 누가 더 운동신경이 원숭이에 가까운지 매일 겨루었다. 훗날 이웃집 아주머니였던 분의 증언을 빌리면
"우리 집 앞에 똥 싸고 간 놈이 벌써 이렇게 컸네?"
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진짜라 하신다. 현관 앞에 똥을 싸 두면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내 똥을 밟겠지란 생각에 지렸던 것이다. 장난전화도 수 십 번은 했다.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기, 걸어 다니는 시민들 머리 위로 대추 던지기 등 댓글 창 열어두면 잡았다 요놈 할 정도로 성수동, 자양동 일대에서 몹쓸 짓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아들만 둘이라는 아내의 초음파 검사 후의 장난에 이것은 내 지난날의 업보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배트맨도 한 영화에 조커와 타노스가 동시에 출연하면 대본 쓴 놈 나오라고 할 것이다. 다행히 둘 중 하나는 딸이었고 다행이란 '뚜껑'을 열어보니 딸이 더 빌런이다.
딸은 상성 상 아빠가 상대하기 버겁다. 아들은 아빠를 닮아 한 가지 작업만 수행하는 단순 플랫폼인 반면 딸은 아내가 남편 부리듯 아빠를 조종하려 든다. 이를테면 복합 쇼핑몰로 데이트 가서 옷 사주고 화장품 사주고 영화 티켓 끊어주고, 저녁을 먹이고 집에 데려다주며 이제 숨 좀 돌리고 여유시간 좀 가지려 하면 내일 또 만나자는 식이다.
딸 키우는 목표는 뚜렷하다. 다 키워서 이혼이란 반품이 들어오지 않을 만큼의 철저한 교육! 이를테면 엄마의 가스라이팅이라거나 남자 싸잡아 무시하기, 게으른 행동, 배려는 남자에게만 적용되는 당연히 받아야 하는 권리 따위의 이기심을 가르치지 않는 게 목표이다.
명절을 앞두고 숙모가 된 아내는 고3인 둘째 조카에게 많은 남자를 만나 보라고 조언한다. 이미 막걸리 한 되 꼴을 잡수어서 거나하게 들린다. 거지 같은 남편 만나지 않으려면이라는 숙모의 조언은 첫째 매형의 손금학 강의에서 내 손금이 배우자 복이 1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 무너지고 만다. 당신 손금 좀 보자며 주머니에서 억지로 꺼냄 당한 나의 손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일전에 손금 좀 볼 줄 아는 친구로부터 배우자 복은 기대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고 있지 않았는데 그 걸 굳이 꺼내 확인해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여전히 딸과 아내는 자고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잘 때는 이것저것 시키지 않아서다. 딸은 잠에서 깨면 소파까지 어부바로 태워서 이동시켜 주어야 할 어깨의 짐이지만 아직은 들어줄만한 부탁이다. 그러나 아내는 아틀라스가 들 수 없는 중력의 한계치를 벗어난 타이탄이자 침몰을 위해 설계된 타이타닉호처럼 남편의 격벽을 질타한다. 로맨스가 실려있어야 할 대본 상자는 도대체 어디 숨긴 것이냐며 나를 거세게 몰아붙인다. 손금이란 해수가 재난처럼 밀려든다. 침몰하는 관계의 수면 위에 마지막 대사는 이러하다. <누가 열었어? ㅅㅂ>
손발이 차갑다.
사주나 팔자 등을 믿진 않지만 이번만큼은 인정당하기로... 명절의 조언 90%는 오지랖이다. 어른들은 인정 안 하는 나머지 10%가 자신이 해준 말이라 믿고싶은 어른들의 환상동화, 명절 동화책을 접고 조카에게 유머 채널을 추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