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연병장 치워야지
병장 엄마는 외박 나갔지 말입니다
아침을 먹이고 나왔더니 현관 앞은 이미 경비 아저씨께서 마무리하셨다. 뒤쪽 주차장은 아직 노다지다. 아빠의 콘셉트는 터치는 최소로, 직접 경험시키기, 대신 안전한 범위 내에서이다.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과도한 보호도 문제지만 안전에 대한 기준이 낮아 이 정도면 무리 없겠지 하는 안일함이 대부분 사고로 이어진다. 부모의 통제력을 벗어난 안전에는 사회 전체의 감시와 신의 가호가 필요하다. 부모의 그릇은 통제력 하에 있을 때에만 적용된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에 마을 전체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실천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눈도장을 찍는다. 발에 밟히는 눈도장이 될지 고사리 손으로 주차장 눈을 치우는 예쁨 스탬프 일지는 여러 차례 찍다 보면 알게 되겠지. 아빠의 큰 그림판 위에 뛰노는 몬드리안 아이들의 발걸음은 가우디처럼 직선을 거부한다.
새벽의 눈은 차곡차곡 쌓인다. 아침 일찍 올림픽 공원에 도착해 누른 셔터가 10년도 넘었다. 눈도장 제대로 찍었다.
아들 딸의 그릇이 커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어떻게'라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빠가 고민하는 '지금'을 옆에서 지켜보게 하고 싶었다. 아이가 똥꼬에 힘을 주어 이를 완강히 거부하면 엉덩이 사이가 열리지 않는다. 적당히 풀린 눈으로 적당히 힘주고 살짝 다리를 벌리고 있어야 깨끗하게 닦을 수 있다. 어떤 날은 덜 씻기어 잔 똥이 틈새시장을 장악한다. 남겨진 자의 슬픔은 냄새로 증명된다. 꼬리가 길면 잡히듯 아내의 2차 검수를 통해 잔 똥 여부를 확인한다. 아내는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 주리 틀듯 엉덩이를 밀어내어 자백받는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엉덩이가 잔 똥을 은닉하다가도 검거가 끝나면 거짓말처럼 갈라졌던 홍해의 엉덩이가 닫힌다. 아이들은 엄마보다 아빠가 뒷수습해주기를 바란다. 세면대에서의 자유의지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 인간 비데가 되었을까. 뒤가 잘 보이지 않는 뒷바라지의 바쁜 손놀림은 아내가 집에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내 몫이다.
물은 비에 젖지 않는다. 다리가 길어진 코끼리는 다리를 저어 물을 건넌다.
큰 그릇에 담으면 크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잭이 가진 잭팟은 씨앗에만 해당하나 보다. 귤을 큰 그릇에 담아 두었더니 쪼그라진 던킨 도너츠가 되어 있었다. 도둑이 보일러실에 들어와 흰색과 녹색으로 채색하다 떠났다. 그릇의 크기만큼 생각의 운동성이 중요하다. 죽은 것들이 움직일 리 없다. 머리가 잘린 생선이 잠시 지느러미와 몸통을 움직거릴 뿐 이내 사그라든다. 최대한 빨리 소진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아이들이 스티브 잡스처럼 늘 배고프고 어리석어서인지 귤 말고도 집에 먹을 게 넘쳐난다. 늘 움직이는 상태를 유지하려는 나와 아내의 바로바로 꺼내 먹을 수 있는 편리함의 대결은 늘 후자의 승리다. 냉장고 고지의 점령 외에도 주방 곳곳이 숨겨진 맛집이다. 국내 대기업과 외국기업의 맛집 대결도 볼 만하다. 그래서 우리 집 냉장고에는 매머드 고기가 포장되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제기된다. 아내가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귤 한 봉지를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고 올 수 있었다. 아직 아이들을 두고 집을 비우고 싶지 않다. 나 역시 국민학교 1학년까지 집에 혼자 남겨진 상태가 싫었다. 나를 버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23시간 만에 부대에 복귀한 아내는 감각적이게도 내가 먹을 음료수와 자신의 어른 우유인 막걸리도 사 왔다. 술은 술로 풀어야 한다는 장모님의 조언에 아직 어제의 숙취가 덜 풀린 듯하다. 내일이 오면 다시 어제의 숙취가 술을 부르는 뫼비우스에 갇힌 아내는 권모술수에 빠진 듯 이내 잠에 빠져든다.
아내는 신발을 벗으며 집안이 왜 이리 난장판이냐고 물었지만 함구했다. 어제 아내가 집을 나서기 전부터 이 상태였기 때문이다. 시댁 식구들이 주신 명절 선물 세트가 바닥을 차지하는 대신 아이들 블록 장난감이 바닥을 차지했을 뿐이다. 쌍둥이 비글 두 마리는 모든 선물을 뜯어 개봉했다. 아내가 집을 나간 사이 포장 종이와 플라스틱을 분리해 버리고 식용유, 참기름은 전기레인지 옆에 참치와 햄은 선반에 두었다. 그중 식기 세트가 있었는데 가위와 감자칼 필러, 과도가 들어있는 선물이 칼집에서 분리되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피곤하다고 거실에 그대로 둔 선물이 큰 화를 부를 뻔했다. 칼집을 떠난 칼과 주방용 가위로 종이를 오리고 있는 오니의 웃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니유니가 받은 세뱃돈 봉투도 큰 누나 집에 그대로 두고 와 계좌이체로 돌려받은 터였다. 어쩌면 '집안이 왜 이리 난장판'이냐는 아내의 대사는 내가 퇴근 후 해야 할 말처럼 들렸다. 나 대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들려주는 아내가 고마웠다. 집에 들어오기 위해 어색함을 무릅쓰고 노래하는 각설이 타령 같았다.
9년 만에 설 당일에 눈이 내렸다고 한다. 결혼은 백 년 동안의 고독이 아닐까 싶다. 함께 고독한 삶을 이어가거나 자녀를 양육하며 고독한 삶을 잊어보려 노력하거나 결국 매한가지다. 모든 이가 죽음 앞에 평등하다는 사실 말이다.
인생의 아름다운 계절과 시간은 짧다. 그래서 곁에 있는 이들을 소중히 손에 담아야 한다. 녹지 않을만큼 부드럽게
비는 튕겨지는 소음과 거친 파동, 울음, 번쩍거림으로 요란하지만 눈은 소리 없이 쌓인다. 고독한 감정과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