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빅스비 육아법

TV 좀 꺼줘

by 이백지

찬과

딸은 덥다고 했다.

나는 밑단이 벌어진 잠옷에 한기가 돌았다. 1시간 남짓 추위에 떨다 딸이 충분히 잠들었길 바라며 전기장판을 켰다. 체지방 10% 내외의 나는 추위에 취약하다. 치와와처럼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그래서 겨울을 싫어한다. 몸도 왜소한데 더 작아지는 기분이다.


1시과

아들이 눈을 떴다.

새벽녘 잠이 덜 깬 상태로 자리에 앉아 비몽사몽 대결하다 다시 쓰러진 아들은 이른 아침 눈을 뜨자 아빠를 보며 아빠 미소를 짓는다. 강아지처럼 달려와 입을 맞춘다. 잠에서 깼을 때 아빠가 곁에 있다는 건 어린이집에 안 가도 되는 날이다. 더 많이 놀 수 있다. 아빠는 주말연속극처럼 아침을 머문다.


얼음을 잡고 부수어 본다.


6시과

나는 최대한 많은 것들을 아이들에게 경험시키고 싶다. 흙이나 눈, 얼음을 만져도 뭐라 하지 않는다. 감촉을 느껴보고 차가움을 경험해 보라는 차원에서 말이다. 빨래의 회전과 말림을 담당하는 아내는 아이들 장갑과 옷이 지저분한 것에 분한 모양이다. 어른들께 존대어(한국어+심화과정)를 교육하는 아내에게 어린 자녀의 행동양식은 늘 예측이 불가능하다.


흙 놀이터에 개똥을 발견, 지지를 멀리 치우고 모래 이불을 덮어준다.


만과

똑딱똑딱 소리가 나는 전기장판, 뭉게뭉게 연기가 나오는 가습기의 전원 버튼, 멀티탭의 온 오프 스위치 등은 소리도 나고 불빛도 나는 나름 소소한 타격감이 있는 플라스틱 장난감이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짜잔! 전등 스위치는 맨 처음 아이가 신이 된 순간의 기억이다.


서울의 삶은 원심력처럼 외곽에 거주할수록 중심부로 접근하기 어렵다.


종과

아이를 키우는 건 스님이 수도원에서 '웃음은 우리에게 해악인가?'라는 질문만큼 폐쇄적인 작업이다. 오후 8시가 되어 TV를 껐다. 너무 오랜 시간 TV 만화에 육아를 의지했다. 아내는 놀자고 보채는 아이들의 입을 술안주로 입막음하고 자신의 입을 술로 막는다. 아이들이 술안주를 빠르게 흡입하자 이번엔 사탕으로 잠금을 시도한다. 오니가 사탕을 다 먹고 설거지하는 내게 어부바를 요청한다. 숟가락은 나중에 씻자.


멜버른에서 찍은 성당 사진이다. 성당은 신이 스며들 공간을 마련한다. 빛을 담는 건 신의 축복을 만끽하는 행위이다.


"TV 좀 꺼줘"


내가 내린 요청에 아내는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보며 입으로만 아이들을 조종한다. 이쯤 되면 아이들에게 아내는 빅스비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실체는 없고 목소리만 있다. 수도원의 스님처럼 어색하게 앉아있다. 손은 핸드폰을 들고 있으면서 추임새 육아를 하고 있다. 기차 여섯 칸을 이어 붙여 둥글게 둘러앉아 기차 표지판의 소유권을 두고 분쟁하는 아이들의 변호를 맡고 있는 순간에도 아내는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한다. 미디어가 부모의 휴식시간을 제공해 주는 반면 미디어의 해악 여부를 묻는다면 대부분 필요하단 의견을 보일 것이다. 세탁기처럼 깊숙이 자리 잡은 TV 만화, 유튜브 영상, 넷플릭스, 게임 등은 아이들 뿐 아니라 부모의 여가 시간 대부분을 차지하는 불가침 중립 조약인 셈이다. 이제는 TV를 끄는 것에도 특별한 용기가 필요하다. PC방 두꺼비집을 내린 기자처럼 거친 항의에 맞서야 했다.


설 명절 마지막 날, 아이들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다. 로션을 바르는 일은 강압적인 올(all) 바름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아내가 드디어 휴대폰을 내려놓고 아이의 몸을 어루만진다. 내가 두 아이를 씻기는 동안 초록 화면에 곡식을 양껏 수확했을 것이다. 아직 수확 쿨타임이 돌지 않았는지 잠잠히 임무를 수행한다. 잠들기 전, 딸은 아빠의 볼에 자발적으로 뽀뽀를 해준다. 내일 아빠가 출근한다는 비보를 전하자 슬프단 말과 함께


"아빠, 핑크색 하마 멋지지 않아요?"


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기린과 하마, 늑대, 고양이 등이 침실에 자주 난입한다. 딸은 이내 불 꺼진 안방에 환하게 빛나는 엄마의 핸드폰 게임을 구경하러 떠난다. 아빠와는 꿀이 떨어지고 그 꿀을 빨고 있는 엄마의 자리를 밀치고 들어간다.


주차 분쟁으로 몸싸움 중이다. 문콕 방지를 위해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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