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비방하는 것에는 묘한 쾌감이 있다. 중학생 때 험담이 좋지 않은 습관이라는 걸 성철이 형에게 배웠다. 스님 이름인 성철이 형은 같은 반인 1년 꿇은 형이었다. 체육시간, 성철이 형처럼 2차 성징이 빠르게 찾아온 여학생이 나를 뒤에서 안았고 "이 게 야해? 이상해?"라고 여학생은 나에게 물었다. 당시 열 명의 선비가 탑재된 나는 당황한 나머지 뭐라 대답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뒤돌아 가는 여학생을 보며 "쟤는 왜 저러지?"라고 말했는데 그 걸 옆에서 듣고 있던 성철이 형은 없는 자리에서 남 이야기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고 알려주었다. 산과 물의 이치를 알려준 고마운 형이다. 성철이 형과 나, 그리고 그 여학생은 어린 나이에 성장이 빨리 찾아와 다들 성숙한 느낌을 품고 있었다. 그로부터 15년쯤 지나 그 여학생과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일찍 성장한 이들은 천천히 늙는 특혜가 있었다.
노안이었던 사람의 나이듬은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가는 행위이다. 나는 남보다 너무 빨리 지나쳐 가있었고 이제 제자리를 찾고 있지만 이번엔 너무 뒤처졌다. 친구들은 아저씨가 되었고 그중 가장 빠르게 늙은 친구는 이미 가장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대략 예수님께서 살다 간 나이와 비슷한 시기였다.
교회를 다닌 수많은 여자 아이들은 배우자 기도를 한다. 배우자를 위한 기도가 아닌 배우자를 달라는 다소 간곡하지만 협박에 가까운 구체적인 어조가 재밌다. 다행히도 내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셨다. 애초에 기도를 하지 않아서다. 결혼 후에도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표정이 다른 것은 목표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결혼생활은 마음이 급해 화장실에 볼 일 보러 갔다가 화장실에 갇히게 된 인생 생존기다. 어떤 이는 볼 일을 보고 미련 없이 탈출하고, 또 어떤 이는 다른 화장실을 찾아 떠난다. 내 목표는 아이를 올바르게 잘 키우는 일이다.
요즈음 아이들은 12시가 되며는 무늘 닫는다고 노래한다.
네 살은 '하지 마'를 알려주어야 할 시기이다. 이 시기를 지나면 달고나 만드는 틀이 들어가지 않는다. 뇌에 주름을 어느 정도 잡아놔야 도덕을 정립하고 적립된 도덕을 바탕으로 타인의 그릇을 침범하지 않는다. 도덕적 아줌마, 아저씨가 되려는 자신을 끊임없이 닦달해 보고 배우게 해야 한다.
남 탓과 비방도 보고 배운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 화살촉을 겨누면 아이들 역시 자신의 핏줄, 또 다른 탯줄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들려지는 손의 위치는 다르지만 부모가 매를 들면 거울의 자녀 역시 매를 들 것이고, 꽃을 들면 반대 손에 꽃을 든다. 대척점이 아닌 대칭의 시소 관계이다. 나를 변화시키지 않고 아이를 변화시키는 건 아이에게 달고나 틀을 별표로 찍어 누르고는 왜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자르지 않았냐고 묻는 것과 같다.
아내는 우울을 넘어 공황장애 초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일주일에 하루 안식일을 가질 만큼 술에 의존하고 아이들의 불규칙한 행동을 잘못된 것으로 판단, 도덕적 올바름으로 수정하려 하지만 개선의 여지가 안 보인다. 가장 큰 스트레스의 원인인 남편은 자신의 친구들이 가진 남편들보다 자신을 덜 사랑해준다고 믿는다. 항상 입에 달고 사는 말은 내 친구들 중 우리 집이 제일 가난해라는 말이다. 오늘 낮에도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며 친구의 자랑에 열등감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내는 결혼 전 의심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 두 번 세 번 두드려야 하는데 한 번만 두드리고 자신과 결혼 할 생각 없으면 헤어지자고 당차게 말했었다. 아내는 결혼이 고팠고, 나에겐 마지막 기회였다. 아내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청첩장을 전달하며 도망치듯 결혼을 하였고, 아내에게는 부케조차 받지 못할 초조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주변 친구들의 결혼과 출산 소식에 마음이 다급해진 모양이다. 20대 후반부터는 "잘 지내?"라는 친구의 목소리만큼 무서운 게 없다. 오랜만에 연락이 올수록 상대에게 강한 심리적 타격을 준다.
고등학교 동창 중에도 아내와 비슷한 사고를 가진 친구가 있다. 자신이 친구들 중 가장 잘 나가야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이상한 집착을 보이는 케이스였다. 이 친구는 주변 친구들 중 자신이 가장 좋은 차를 가져야 마음이 놓이고, 아내도 친구들보다 어린 사람인 것에 만족감을 느꼈다. 자신이 설계한 비교의 늪에 최상단에 있어야 불안이 해소되는 친구다.
불행히도 나는 아내를 최상단으로 노출시키기에 부족한 사람이다. 아내에게 (공황장애에 대한) 개선의 노력을 기울여 봄이 어떠냐는 질문을 했다. 한참 후 돌아온 대답은 자신은 충분히 노력을 기울이는데 가장 큰 스트레스는 남편이 남의 편 같다고 말했다.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개선의 노력을 기울여보자고 질문을 수정했다. 그러나 마음을 수련하지 않고는 증상의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울 거라는 말에 반감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파하는 자신을 어루만져 주고 관심을 기울여주면 자연스레 해결되는데 당신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게 제일 큰 문제라 여겼다. 나는 가장 큰 스트레스의 원인이 해결된다 하여도 심리적 불안이 큰 사람은 또 다른 스트레스, 또 다른 불안 요인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마음을 통제하고 잘 다스릴 줄 아는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또 다른 반작용이 돌아왔다. 자신이 매일 괴롭히고 못 살게 굴어도 내가 평온한 심리상태가 유지될 거 같냐며 제발 자신 좀 도와달라고 말했다. 충분히 도와주겠다고 했다. 아내는 잠들기 전 아이들의 분리 수면은 언제가 좋을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초등학생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고 아내는 절대자 www에게 자문을 구했다. 3세 이상이면 가능하다는 무속신앙의 답변이 돌아왔다.
자녀와 분리 수면을 하면 부부가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까? 아이가 부부 사이를 밀어내는 원인일까? 왜 아이들은 아빠를 찾을까? 선잠에 들었을 때 아내는 오니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다 놓쳐 오니가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 잠들지 않고 놀고 있는 아이를 훈계해도 달라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는 아이를 달래 잠이 들었다. 우리는 달라질 수 있을까?
의심의 밤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