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언어 앞에서는 아빠도 아이가 된다. 밀라노 산 마르코 성당 안에서 굿판이 벌어진다. 베르디 레퀴엠에 맞서 아빠 힘내세요를 개사해 야호 힘내세요, 할머니 할아버지를 입장시킨다. 클래식과 설교는 닮아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음식의 맛과 온도는 시시각각 변한다. 전달자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맛과 온도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도보냐 자전거냐 오토바이냐 승용차냐에 따라, 단건 배달인지 여러 곳을 방문해야 하는 배달인지, 고객의 기분, 허기짐에 따라 평가도 달라진다. 일정 상태 이상의 높은 수준은 잠시 뿐이다. 창작자의 손을 떠나 고객의 입에 다다르기까지 맛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간혹 배달자가 늦으면 자신이 만든 음식이 식을까 봐 담요를 덮어두었다 건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하루 매출과 오늘 장사는 어땠는지, 퇴근 후의 삶을 꿈꾸며 하루를 보낸다.
겨울철에는 음식의 온도가 빠르게 식는다. 마치 나이를 자각하는 순간부터 치밀하고 촘촘하게 늙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연비가 예전만 못해 기름진 음식을 찾는다. 전비라 해도 무방하다. 미래엔 기름지다는 표현이 충전소가 주변에 많다 라는 의미로 쓰일 수도 있다. 맛의 온도는 시시각각 변하는데 자신의 온도는 일정하다고 착각한다. 건물마다 체온 체크를 하다 보면 매번 숫자가 다르게 나온다. 변온동물이 세상을 지배한 모양새다.
현재의 나는 고열의 나이로 접어들었다. 나이가 바람직한 체온을 넘어서자 마음이 뜨거워진다. 타자기로도 빵을 구울 기세다. 암실에서 버닝과 닷징으로 노릇노릇하게 구워낸 사진이 찰나의 아름다운 맛을 지니고 태어난다. 글은 미장이다. 바르고 또 발라야 마음이 평온해진다. 미술은 캔버스의 미장이고 건축은 미의 장식이다. 아름다운 것들에는 따스한 빛이 머물다 간다. 건축과 영화는 빛을 담는 그릇이자 천재들의 놀이터이다. 많은 이들이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와 건축물을 통해 잘 놀다 간다.
제주도에 가면 프로 복서 출신에서 건축가로 변신한 안도 다다오가 놀다 간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대림미술관에도 비슷한 형태의 빛이 머물다 간다. 사진은 늘 빛을 쫓지만 그림자를 뒤따를 뿐이다.
빠르게 완성되는 집은 바르다고 할 수 없다. 공정의 올바름을 무시한 집은 쉽게 무너진다. 맛집 역시 그렇다. 맛집은 시간에 인색하다. 빵이 익어가는 시간과 커피가 생산되는 과정은 들이키고 씹는 시간을 초월한다. 타인의 노력이 나를 살찌우는 것이다. 감사함은 타인의 노력에 대한 완벽한 배웅이다. 맛은 그 뒤의 취향이다. 다시 자신에게 물어보자. 내가 타인에게 향과 맛, 멋을 전하기 위해서는 숙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음의 냉장고는 너무 자주 열면 춥다. 가끔씩 목도리를 두르고 꺼내 먹자. 가정이 최고의 맛집이어야 한다.
역곡 베어키친은 자녀에게 먹일 음식을 판매하는 맛집이다. 강남역 부근 이탈리아 음식점을 진두지휘 하던 사장님의 음식 맛이 일품이다.
어린 자녀가 자라면 밥은 먹고 다니는지가 최대 관심사다. 자녀가 집 밖에서 끼니를 해결할 때가 많아지기에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지, 끼니는 거르지 않았는지부터 묻게 된다. 자녀의 어린 시절은 반대로 아빠가 밖에서 주로 끼니를 해결한다. 서로 시간의 여유가 생길 무렵 아이는 출가하고, 아빠는 다시 자녀 결혼에 대비해 보금자리 마련으로 분주해진다.
저녁시간은 애정의 온도를 재는 시간이다. 애플리케이션으로 자녀의 등원, 하원 시간을 보고 받고, 오늘은 무얼 먹고 낮잠은 얼마나 잤는지 배변활동은 잘 해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어플이 커뮤니케이션의 좋은 도구가 되어주어 이것 또한 고마운 일이다. 신이 자신의 덕을 인간에게 나누어줌을 의미하는 'communicare'는 세상에 골고루 뿌리내려 인간의 의사표시를 전달하는 통칭으로 쓰인다.
아이들에게 저녁 식사 시간 동안 어린이집 활동을 복기시켜 묻는다. 놀이는 재미있었는지를 말이다. 불과 몇 시간 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맛의 미소가 첨가된다. 주변에 고마운 사람들이 많을수록 삶은 풍족해진다. 인생의 온도가 식지 않게 유지되는 건 촘촘한 인간관계를 통해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다. 차에 밥을 주니 주유 등이 보채지 않아 좋다. 불안과 함께 달리다 퇴근한다. '오늘도 무사히' 어느 운수업체 벽돌에 쓰인 문구다.
유익한 글을 쓰는 사람들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음악을 만들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주유소처럼 주변에 많아 기분이 좋다. 가득 채우지 않아 주유 등이 자주 들어온다. 마음속의 주유 등은 주로 셀프로 채운다. 배달 시장의 최대 호황기인 요즈음 그래도 최고의 맛집은 가정이어야 한다. 오늘도 아이들은 자발적 뽀뽀로 아빠를 한 입 베어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