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만큼 돌려주려는데 생각보다 받은 게 많다. 돌려받는 사람은 부담스럽지 않아야 한다. 군대에서 여자 친구에게 돌려받은 반지가 들어있는 편지만큼 부담스러운 게 또 있을까? 내가 다닌 학원 목록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엄청 많은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자라왔다. 아내는 그런 나를 온실 속 화초라 일컬으며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답답하다 말한다. 화초는 생존 외에는 할 일이 없다.
일찍 퇴근해서 자신을 도와달라 전화가 왔다. 화초도 일을 한다. 저녁 준비를 자기가 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화초다. 아내는 냉장고에 어떤 재료들이 있는지 일러주고는 침대에 들어가 눕는다. 오랜만에 요리를 시작하지. 지난번 내가 지은 시와 밥은 뜸을 들이다 말고 뚜껑을 열어 휘적거려 속이 단단하고, 밥알끼리 뭉치지 않아 쫀득한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시밥...
중불 약불 뭐가 좋을지 조언을 구하자 불은 8번, 듀얼을 켤지 말지를 묻자 틀어도 된다고 한다. 우선 계란 프라이를 먼저 두 개 만들고 슬라이스 되어있는 오리를 내려놓자 기름이 튄다. 샤워하고 곧장 나온 터라 팬티만 입고 있는데 상체로 기름이 튄다. 열화와 같은 성원에 펜싱 자세로 뒤집개를 들고 슬라이스 된 오리들을 나눈다. 적의 공격이 맹렬하다. 몸통에 기름이 닿으면 후드에서 녹색 등이 들어오며 상대의 득점을 알린다. 이대로 질 수 없지. 계란 프라이 후에 바닥을 안 닦아서 계란 찌꺼기들이 오리를 더욱 애태운다. 같이 타자는 심보다. 불을 8에서 6으로 줄여 타협한 게 패착이었을까?
집에서 뉴스를 보다가 현장에 가보니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있다.
'요리는 탄 맛이지. 불맛을 내려다 불길에 휩싸였어. 정신을 차리니 재만 남았더라고.' 첫째는 고기가 질긴지 씹다 뱉는다. 원래 질긴 고기를 싫어한다. 자세히 보니 엄마랑 턱살이 닮아있다. 오리도 등심과 안심이 있을까? 에지 있게 슬라이스 된 상태라 알 턱 없다.
아내는 내가 간단한 요리나 굽는 거 정도는 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 태도가 마치 사별을 준비하며 나 혼자서도 잘 먹고살라는 속내는 차마 보이지 않는다. 남편이 죽는 시점도 본인이 죽고 나서 일주일이나 한 달 뒤에 죽으라 말한다. 다른 여자 만나지 말고 따라오란다. 고지서 들고 찾아오는 저승사자 같다. 아버지께서도 어머니의 말기 암 판정 이후부터 요리를 시작하셨다. 어머니의 암이 더 이상 확장성을 잃었을 때 아버지에게 여자 친구가 생기셨다. 난 아버지의 삶을 존경한다. 내 롤모델이다.
음식을 잘 굽는 건 신이 주신 능력이다. 다음 날 또 구우라고 할까봐 히토기라쿠 길동본점에서 꼬치를 사다주었다. 술안주를 조공으로 바치자 장수는 막걸리를 드시며 호탕히 웃는다.
아내는 아버지의 여자 친구를 시어머니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내 어머니와 마주친 적 없는 아내는 신혼 초부터 시어머니란 존재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 그 자리를 탐내려 하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아버지 역시 더 이상 강요하지 않으셨다. 숙주의 침략을 조기에 방어했다.
아내는 장모님의 남자 친구도 싫어한다. 카메라를 통해 웃어주는 아이돌이나 어린 남자 배우에게는 '날 가져요'하며 좋아해도 나머지 남자들은 무시나 경멸로 일관한다. '이것도 몰라? 하긴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 그동안 인생 어떻게 산 거야?' 이런 들리는 혼잣말로 상대를 무력하게 만든다. '아이온'과 '검은 사막'으로 다져진 혼잣말 채팅에 길드가 와해될 판이다.
초보를 대하는 고수들의 태도가 비난에 가득 차 있으면 초보 운전 차량은 집 밖에 나오기 겁난다. 아내도 면허는 있지만 사고로 이어질까 봐 무서워 운전을 평생 안 하겠다고 한다. 업무용 차량으로 끌고 다니는 승합차 말고 한 대 더 사자고 하지만 운전은 싫단다. 남편의 두 집 살림은 불편해도 차량 두 대 운용에는 관대하다.
영 유아는 초보운전에 가깝다. 실수도 많고 규율도 잡혀있지 않다. 실수에 무자비한 세상에 아이들은 태어나지 않는다. 나 역시 어린 시절 많은 실수들을 용서받으며 자라왔다. 대부분 부모님께서 용서를 구하시고는 나를 잘 타일렀는데, 그렇게 10년을 개구쟁이로 지내면서 그 시간 동안 부모님이 늙어가는 건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군대에서 첫 휴가 나왔을 때 시간의 상대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에겐 100일의 시간이 지나 있었지만 부모님에게는 100달의 시간이 흘러있었다.
부모님께서는 자식과 떨어져 지내면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아들이 서울에서 경기도 안성까지 매일 대학을 오갈 때도 기숙사 생활과 자취를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군 생활은 막을 수 없는 지구의 자전처럼 아들을 내핵으로 데려갔다.
아들이 철들기를 바라며 흰머리를 채우고 특수분장으로 주름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해주기를 바랐지만 반전은 없었다. 100달치의 걱정은 일곱 번을 더 하고 나서야 아들을 내핵에서 토해냈다. 아들의 시간도 다시 부모처럼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 첫째 조카도 곧 군의 부름을 받을 것이고 누나도 빨리 감기 버튼을 눌러야 할 시점이 올 것이다. 내 아들도 나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회전목마가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