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2일 차

고립

by 이백지

새벽에 아들이 고열로 깼다. 잠에 취해 잘 안 깨는 녀석이 무장공비처럼 38도 선을 오가고 있었다. 임신테스트기를 닮은 코로나 테스트기에도 두 줄이 뜬다. 어제저녁엔 분명 한 줄이었는데 내가 옮겼나? 아직 PCR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나 때문인 거 같아 미안하다. 해열제를 먹고 다행히 간첩처럼 고열은 잡혔다.


오전에 약국에 들러 간편 키트 두 개를 더 샀다. PCR 검사 결과 음성이라 밖을 나갈 수 있었다. 한 번 더 재보아도 아들은 양성이었다. 곧바로 구청 보건소 앞으로 가보았지만 이미 검사 인원을 조기 마감한 상태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운영하는 곳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집에 들러 밥을 먹고 기저귀를 갈았다. 나도 성인용 기저귀를 차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 보건소 앞을 가득 메운 피난민 행렬처럼 긴 줄을 보고 오후는 더 심할 거라 예상했다.


아들은 5분도 지나지 않아 집에 가고 싶다 한다. 칭얼대기를 반복해 안아주었더니 조용해진다. 이번엔 내가 5분도 버티기 어렵다. 13kg 군장을 들춰 업고 42.195km 행군을 시작한다. 2시간 40분을 기다렸으니 나쁘지 않은 기록이다. 아직 서브쓰리(마라톤 3시간 이내 기록)에는 도달하지 못했는데 PCR 검사받는 기다림의 기록으로는 달성한 셈이다.


아들은 자신의 차례가 다가올수록 면봉이 싫다 말했다. 아빠의 어깨 위에서 잠든 꿈에 커다란 면봉이라도 쫓아온 모양이다. 유모차를 가지고 올걸 그랬다. 아내는 딸과 함께 놀이터를 다녀왔다고 언제 집에 돌아오는지를 전화로 묻는다. 매번 전화 올 때마다 한두 시간이면 된다고 말하지만 한두 시간이 지난 후에도 다시 한두 시간이라 말한다. 시간은 음성을 지닌 민간인 신분에게만 흐른다.


아들의 코를 찌른 면봉 끝에 피가 묻었다. 내내 울던 아이는 주차한 차에 돌아와 중장비 동요 유튜브를 틀어주자 울음을 그친다. 흐르지 않은 눈물이 아픔에서 감동으로 변절한다. 차 주변에 악어는 보이지 않는다. 나 역시 차에서 외장 스피커로 듣는 음악을 좋아한다. 제한된 공간에서 낮에도 파티를 즐길 수 있다. 아모르파티처럼 운명을 사랑할 때다.


아들은 길에서 추위에 떨어서인지 다시 고열이 찾아왔다. PCR 검사 후 강아지와 산책을 다녀왔더니 아이가 아빠 언제 오냐고 닥스훈트 허리처럼 계속 기다렸다 말한다. 길고 긴 기다림이었나 보다. 강아지 산책 후 침대에 누워 아빠를 기다린 아들은 아빠를 면회 온 가족처럼 반긴다. 베지밀이나 뉴케어라도 사 올 걸 그랬나? 아내는 아들의 PCR 검사 결과를 90% 양성으로 예상하고 있다. 나는 70%쯤으로 보고 있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양성, 같이 어울려 노는 친구의 확진으로 바이러스가 코 앞까지 다가왔지만 아내와 딸은 음성인 점, 아빠인 내가 간편 키트 양성에서 PCR 검사 결과 음성으로 나온 걸 감안하면 30%의 희망을 가져봐도 괜찮을 듯하다.


단순 감기로 지나가기를 바란다. 아직 4살 아이가 겪기엔 너무 잔인한 추억이지 않은가. 이제 막 인큐베이터의 공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알을 깨고 나온 아이한테 코로나 19가 코 앞으로 다가오면 세상 참 잔인한 계절만 있다고 느끼지 않을까? 이 와중에 아들은 당연한 말을 불쌍하게 내뱉는다.


"아빠, 우린 가족이야"

하루에 한 번은 본인도 가족의 구성원임을 환기시킨다. 신생아 중환자실에 혼자 남겨져 있어도 넌 우리 가족이었어. 하루 두 번밖에 면회가 허락되지 않아서 그렇지, 너도 우리 가족이란다. 우린 널 버리지 않아. 누나가 말하잖아. 어제 아빠가 했던 말인데 딸이 그대로 아빠에게 전해준다. 내가 말했을 때랑 느낌이 다르다.


"아빠, 꿈나라에서 만나"

온 가족이 마스크를 쓰고 자는데 꿈에서는 벗고 만날 수 있을까? 잠결에 아들이 허공에 팔을 허우적 댄다. 아들이 꿈에서 잡으려 하는 건 먼저 걷는 가족의 뒷모습이 아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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