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려면 허리에 파스를 붙이고 생활해야 한다. 13kg 아들과 15kg 딸은 아빠의 눈높이에서 보는 세상을 즐거워한다. 아빠가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끼우면 미래를 보고 올 수 있다. 아빠는 그 순간 과거를 향해 돌진한다. 눈앞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라도 본 것처럼 지난날 아버지 허리 아프다 하실 때 가벼운 몸무게로 허리 위를 밟고 다니며 안마해 드렸던 때가 떠오른다.
아들은 한때 통증에 무감각한 아이처럼 보였다. 침대에서 자다가 떨어져도 세면대 위에서 미끄러져 엉덩이로 떨어지고 데굴데굴 굴렀을 때에도 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 울지 않았다. 신께 감사한 순간이다. 뼈와 살을 최대한 무르게 만들어 충격이 가해지지 않게 설계하셨다. 가끔 6층 높이 아파트에서 영유아가 떨어졌다는 사고 소식에 그들이 안전한 이유는 이 오징어 같은 충격흡수 능력 탓이리라. 그러나 자랄수록 이 능력은 점차 능력을 잃는다. 이제는 엄마가 꿀밤을 때리기도 전에 아프다고 운다. 우리는 그렇게 시간 앞에 비겁해지고 만다.
아빠 역시 아픔을 잊은 지 오래다. 식구들 먹여 살리려고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은 당일에도 그다음 날에도 오한이 찾아와도 두꺼운 옷과 목도리를 두르고 일했다. 허리가 아픈 것도 아직 개미처럼 끊어지지 않았으니 목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여왕개미와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아이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 하루 일과를 바쁘게 살아가는 개미는 정치에도 무감각해진다. 소신은 있지만 의견과 논쟁을 하는 시간조차 의미 없는 시간처럼 여겨진다. 빌어먹고 사는 백성이 나라님 걱정하는 꼴처럼 보여 연예인 이야기도 별나라 달나라처럼 멀고 아득하다.
가끔 아내는 냉장고에 무엇이 들었는지, 아이들 감기약을 섞어 만드는 복잡함을 설명할 때 한 숨을 내쉰다. 한숨 습관은 딸도 따라 한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린 나이치곤 깊은 한숨을 내쉰다. 일개미에게 아세트아미노펜, 이부프로펜 성분이 다 거기서 거기 같은데 2시간 간격으로 교차 복용을 해야 하고 하루 복용량도 34cc, 25cc로 제한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복잡한 현실 세계다. 냉장고의 세계는 또 어떠한가. 마치 물류 창고처럼 비워질 듯 비워지지 않은 가득 채움으로 인해 뒤쪽엔 매머드 고기라도 숨겨놓은 듯 알 수가 없다. 지금이야 코로나 자가격리로 자주 열어봐서 냉장고 이웃들과 친숙하게 지내 대충 위치 정도는 파악했다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할 때 가끔 열어본 냉장고는 아내의 마음만큼 차가웠다. 자주 티셔츠를 열어 올려 가슴이라도 잘 계신지 물어볼 걸 그랬나 보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코로나 19 증상이 찾아왔다. 38.5도로 체온은 높은데 몸은 춥다. 손발이 차갑고 열은 6시간가량 지속된다. 먹던 죽은 말보로 미디엄 맛이 나고 연어구이는 말보로 레드 맛이 난다. 열이 38도 수준으로 가라앉은 후에야 허기짐을 느껴 뭐라도 집어먹는다. 몸은 안 좋은데 아이들 감기약도 먹여야 하고, 오늘 구청에서 보내온 체온계를 아이들이 가지고 놀다 박살 내자 화가 치밀었다. 악마처럼 잔인하게 놀다가도 순한 양처럼 부모가 안아주길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한다. 부모가 되는 과정은 말 귀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를 사람의 형태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 부모의 인내와 올바른 방향성이 요구된다. 나는 과연 올바르게 살았는가를 물어보면 내 어린 시절이 더 처참하다. 적어도 밖에서 놀다 집을 잃어버려 경찰서에서 지낸다거나 신던 신발 중 꼭 한 짝만 잃어버리는 빈번한 만행, 생명을 담보로 위험한 놀이에 뛰어들진 않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삶이 힘들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을 교육시키고 싶다. 건강하자. 친구들아,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우리 가족은 다시 건강해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