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 SM관계

by 이백지

아이들이 코로나 양성에 해당하자 이런 고민이 든다. 나라도 살아야 하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침투한 아이는 이전 건강한 내 아이가 아니던가? 아직 대소변을 도와주어야 할 나이에 먹고 마시는 것도 챙겨야 할 나이이다. 가끔 아내들은 남편을 이렇게 생각한다. '먹고 마시는 걸 챙겨주는 아들이 생겼어요. 결혼과 함께. 다행히 대소변은 도와주지 않아도 되네요.'


결혼 후 배우자를 코로나 양성 취급한다. 나라도 살아야 하나? 자신의 삶을 살지 않은 많은 타인의 조언은 이혼이 답이라 말한다. 마치 동화 속 해피엔딩처럼 그 결정이 너를 해방시킬 것이며 자유케 할 것이라고 부추기는 듯하다. 그래서 뭐 먹고살 건데? 헤어지고 나서도 전남편에게 양육비 받으며 살아갈 예정인지 묻고 싶다. 가정폭력도 아니고,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도박에 빠진 것도 아닌데 아내들은 70~80년대 성행했던 쥐잡기 운동처럼 남편을 잡아 가두려 한다.


여기에는 지배에 대한 복종, 그러한 상호 작용에서 누리는 만족감의 심리가 깔려있다. 아이들을 키우며 나 역시 이러한 부분을 고민한 적이 있다. 특정 상황에 대해 공포를 조장하고 구원자처럼 부모가 등장해 사건을 해결하면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 이러한 심리적 주종관계를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하려는 부모도 있다. 결국엔 내가 의존성을 부여한 대상이 자신이 의존하게 되는 모순에 빠지게 되는데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자식 간에 이러한 의존 관계는 최대한 빨리 정리해야 할 부분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는 부모에게서 자립할 수 없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치매 증상이 심해지자 삼촌은 나에게 엔진오일을 뭐로 넣어야 할지를 물어보셨다. 삼촌이 트랜스포머를 얻게 되었다고 의심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1년 전까지 매일 신문을 보시며 세상에 관심을 가지셨는데 첫째 아들은 너무 의존성이 강한 아이로 성장시켰던 것이다. 삼촌의 첫째 아들도 부모에 대한 의존성이 강해 그 정해진 프레임을 벗어나는데 20년 이상을 허비했다. 삼촌이 권한 건축학과에 입학했지만 자신의 적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식은 자신의 DNA를 물려받아 대를 잇지만 자신의 뜻을 꼭 따를 필요는 없다. 부모가 원하는 삶, 부모가 원하는 결혼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경제적 지원은 받아들이되 사상의 강요는 철저하게 배척해야 한다. 자립심은 부모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의심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