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째 열이 38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 집에 구비해둔 해열제도 다 떨어졌다. 아이들 해열제로 사둔 좌약이 생각났는지 아내가 말한다.
"좌약 넣어줄까?"
"지금은 아냐. 아이들 재우고 나서. 교육 상 좋지 않은 거 같아"
지금까지 아이들은 음식과 약은 입으로, 똥은 엉덩이에서 나온다고 배워왔다. 굳이 아이들 앞에서 이러한 기본 상식을 깨는 행위를 직접 시연해 보고 싶지 않았다. 상견례 자리에서 "아빠 나 그때 충격이었어."라며 썰을 푼다면 아빠는 코로나 앞에 엉덩이를 내어주고만 비겁한 남자로 남을 것이다.
마지막 자존심을 버리고 아버지께 해열제 좀 사다 달라고 부탁드렸다. 아내는 아버지께서 사다주신 약을 들이키며 내일 완쾌 후 술을 먹겠다고 다짐한다. 최근엔 눈밑이 파르르 떨린다며 마그네슘도 택배로 주문했다. 스트레스나 알코올, 흡연 등이 몸속의 마그네슘을 부족하게 만드는 원인인데 아내는 알코올을 부정하며 모두 스트레스 탓으로 돌린다. 술을 마시기 위해 건강을 챙기는 애주가의 건강법이다. 어르신들 역시 술을 약주라 불렀다. 술의 다른 이름은 약주다.
아들은 어제도 그제도 아침에 일어나 아빠부터 찾는다. 초콜릿이 먹고 싶다는 아들에게 치즈와 귤을 주었더니 영화 '데스노트' L처럼 쭈그려 앉아 먹는다.
'미안, 아직 아빠 이름을 알려줄 수 없어. 나라도 살아야지.'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 여주인공 미츠하의 손에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이름 대신 이런 말을 적었다.
"널 좋아해"
손바닥을 펼치면 네 손에, 네 DNA에 아빠가 그렇게 적어두었어. 아빠 이름은 몰라도 돼. 손바닥에는 3월의 벚꽃이 그려져 있어. 네가 태어난 달이기도 해.
영화 '타짜'에서 정마담이 가지고 있던 패는 무엇이었을까?
예림이 손에 쥐어진 패
지난해 아기 이름 인기 순위에도 'ㄴ' 자음으로 끝나는 이름이 유행처럼 많이 쓰였다. 이름 뒤에 ~이를 붙여 부르면 무언가 귀여워 보인다. "예림이 그 패 봐봐"
호구는 정마담을 수동적이며 의존적인 대상으로 여긴다. 모두가 그녀를 정마담이라 부르지만 호구만은 예림이라 부른다. 호구는 정마담을 의존 명사처럼 여기며, 자신만이 그녀를 수식해줄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를 수식해주는 유일한 믿음은 바로 돈이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관계의 밀접도를 상기시킨다. 이름보다 밀접한 관계는 호칭으로 엮인 관계다. 굳이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엄마나 아빠, 아들, 딸이란 단어로 대상을 설명할 수 있다.
2월의 다음 패는 사쿠라다. 3월이 그립다. 배를 빠져나간 호구는 예림이를 그리워할까? 그랬다면 호구는 국문과 교수처럼 다시 돌아올 것이다. 3월은 내년에도 다시 찾아온다. 하나님도 못 말리는 계절의 연속이다. 판이란 게 그렇다. 내가 없으면 없는 대로 다음 세대에게는 다음 세대의 3월이 오기 마련이다. 패를 두 장 가졌다. 오늘도 2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