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를 타짜

by 이백지

38도의 고열이 잡히자 구토할 것 같은 간헐적 기침이 이어진다. 약을 자주 먹어 간이 헐었을 게다. 오한과 열이 잡힌 것만으로도 좀비 같은 행색은 면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일주일 아팠다 하고 어떤 이는 5일, 나는 3일 아이들은 이틀 만에 회복되었지만, 아들과 나처럼 일주일째 기침과 가래를 달고 사는 경우도 있다. 현재 진행형이라 상태는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화란은 술집 주인이다. 보고 싶을 때 언제든 찾아가 만날 수 있다. 이야기 몇 마디 나누는 것만으로도 꽤 가까워진 듯하다. 미용실에서도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방구석 찐따에게 몇 마디 건네주는 질문과 대화가 마포대교에 적힌 자살방지용 문구보다 강력한 삶의 힘을 준다. 그래서인지 머리카락도 빠르게 자란다. 술을 핑계로, 훌쩍 자란 머리카락을 핑계로 국문과 교수처럼 자식 병원비를 들고 찾아가 머리와 간을 맡긴다. 힘든 삶의 위안이라는 안주는 참으로 달콤하다.


한 달에 20일가량을 커피 마시러 간 적이 있다. 수연이라는 카페 알바를 보고 싶어서다. 한 시간 가량 책을 들여다보거나 게시판의 잡다한 글을 뒤적이며 가끔씩 바라보는 옆모습이 참 매력적이었다. 벌써 20일째 고광렬처럼 생긴 아저씨가 찾아온다. 나에겐 고니처럼 보이는 남자 친구가 있는데 말이다. 라테만 시키는 아저씨가 말 걸기 전에 남자 친구를 가게로 불렀다. 왜 30대 이상 아저씨들은 자신이 고니인 줄 착각하는 걸까? 대부분 고광렬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남자 친구가 온 후로 광렬이 아저씨는 이 판을 떠났다. 타짜는 하나로 충분하다.


고니는 순정을 찾는 듯하면서도 어느 순간 더 큰 재미와 판돈을 따러 이곳을 떠난다. 언제 어디로 향할지 귀띔도 없이 이곳저곳을 헤맨다. 잠시 머물다 떠날 남자다.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결국 김혜수의 곁을 차지한 남자는 뜨내기 고니가 아닌 고광렬 씨였다. 잠시뿐이지만 고광렬이 정마담을 쟁취한 현실에 많은 남성들이 용기와 희망을 가졌다.


누군가는 화란 또는 정마담을 꿈꾸며, 또 다른 누군가는 고니, 고광렬, 호구 등을 찾는다. 누나 돈 다섯 배로 땄어도 집에 가기 싫은 게 타짜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속내는 인생 관 뚜껑에 못 박히는 소리 듣기 전까지 돈이라는 그림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 아닐까 싶다. 욕심이 과하면 내가 가진 패가 필승의 패로 보인다. 뚜껑을 열기 전까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상대의 패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아들은 접시 밑장을 빼다 걸려 한 손을 봉인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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