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이 존경인 사회

by 이백지

"일행 있으세요?"

"네, 제 스마트폰이요."


주방과 국가는 부패 척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조리의 공간에서는 부조리에 맞서 칼을 휘둘러야 한다. 용기를 가지고 미래의 불을 밝혀야 한다. 그릇의 크기와 관계없이 음식은 나누지 않으면 부패가 진행된다. 부패를 더디게 진행시키기 위해 대화라도 나누어야 한다.


스마트폰과 나누는 식사는 마치 초식동물과 같다. 입으로는 음식을, 눈과 귀는 다른 정보에 집중한다. 과거 점심시간에 혼자 들어가는 식당만큼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게 없었는데 이제는 미안한 마음조차 들지 않게 많은 식당이 폐업하고 있다. 처가 형님이 운영하는 가게도 다음 달까지만 영업하신다고 한다. 짧은 기간에 인지도를 쌓아 올리고 나름 주변 상권에 성공적으로 안착해 인근에 2호 점도 낼 정도로 장사도 잘 됐었는데 배달을 하지 않는 영업 방식으로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상황이다.


형님 슬하에 먹여 살릴 처자식이라도 있었다면 계속 운영하셨을 터인데 그동안 자신을 너무 갉아 넣었던 탓에 방전된 듯하다. 남자에게 처와 자식은 그런 존재다. 천사인 줄 알고 키웠더니 전사였고, 아빠는 어느새 전사하고 마는 시나리오는 어느 집 가정의 가장마다 유사하다. 똑같은 번아웃이 와도 아빠들은 버틴다. 자존심 내세우는 아빠는 책임감보다 가오(폼)가 앞선다. 폼은 일시적이어도 클래스는 영원하다. 클래식한 남자는 책임감에 고개를 숙인다. 그렇게 얻어낸 먹이를 가정의 주방으로 가져가고 국가는 그러한 행위들로 1년 예산의 먹이를 배분한다. 코로나 2년에 재료가 부패할 만큼 주방도 국가도 이미 활력을 잃었다.


아내는 오늘 처음으로 세 끼니를 준비했다. 그릇도 손가락도


코로나 자가격리 마지막 날 아내가 먼저 일어났다. 구명보트의 맹수가 아침을 먼저 움직이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처먹고 왜 안 치워?"


식탁에 놓인 그릇을 두고 아침부터 불꽃 잔소리를 들었다. 새벽에 깨어 우유에 첵스 초코를 말아먹고 메모장을 켜 빨간색 커서를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는 와중에 딸이 잠에서 깨 아빠를 부른다. 식탁에 둔 그릇이 마음에 걸렸지만 딸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딸은 박근혜 전 대통령 같았다. 한 시간 정도 지나 잠들었겠지 하는 마음에 화장실을 가려하자 나를 붙잡는다. 가지 말라고, 애절하게 방광이 소리친다. 한 시가 급하다고, 하는 수없이 딸아이를 들춰업고 화장실 순방길에 올랐다. 변기 앞에서 바지를 잡는 순간 딸아이가 등에서 스르륵 미끄러지듯 흘러내릴까 봐 다시 소파로 향하고 어둠 속에 혼자 내버려 두지 않게 문을 연채로 볼 일을 봤다. 그녀를 태운 비행기가 다시 안방에 귀국했다. 성공적인 방광 유로 순방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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