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았던 걸까? '호칭의 자아'에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학교에 갔던 언니들을 위해 오전반 마치고 일찍 집에 온 나는 계란 프라이를 해주겠다며 프라이팬을 태웠다. 온 집안이 매캐한 연기로 가득했다. 후드가 없던 주방이라 언니들에게 계란 프라이 대신 매캐한 연기를 선물해 주었다. 큰 누나는 그 후로 불에 탄 음식은 암을 유발한다며 먹지 않았다. 아마도 그때 불이 나지 않았던 건 요리에 그만큼 열정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보름 전에 이미 한 차례 생각에 머물다 갔다. 어머니도 췌장암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 역시 위암 판정을 받으시고 위를 절제하고 난 뒤 건강히 지내신다. 어쩌면 예견 가능한 DNA 지도였고 큰누나는 이미 이정표에 도착해 있었는지 모른다.
큰누나의 경우 B형 간염 접종을 6회에 걸쳐 진행해도 항체가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담당의가 이 정도면 항체가 생기지 않는 특이체질이라 했다. 코로나 백신 역시 체내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할리 없었다. 그러나 과거 큰누나 역시 아내처럼 정부 정책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편이었고 몸상태가 망가지고 난 이후 관련 정보를 수집하여 더 이상 백신에 대해 안전한 치료제일 거라는 생각을 버리게 됐다. 과거에 식품에 개별적인 알레르기 정보는 제공되지 않았다. 개개인이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가습기 살균제는 어떠했는가? 버젓이 판매되는 상품의 위해성을 누가 예측이나 했겠는가. 정부에서 알아서 검증 후 출고된 상품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내 친구는 본인이 기흉으로 공익 판정을 받았던지라 백신에 대해 스스로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지금은 2차까지 접종을 한 상태라고 한다.
아버지 역시 주변 친구분 중 한 분이 1차 백신을 맞고 얼마 안 있어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백신을 거부하셨다. 지난해 나는 1차 백신을 맞기로 결심하고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백신 부작용도 있고 위험성 여부도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게 많아서 망설이고 있어"
"백신 맞고 이상 반응이 생기는 건 그 사람 운명이 거기까지인 거지"
나는 혹시 백신을 맞고 잘못되면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누가 돈 벌어오나? 걱정이었는데 아내는 그런 걱정과 불안들로 하루를 채우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내의 쿨한 답변을 듣고 백신을 맞았다. 아내는 여전히 백신의 효능과 정부의 정책 방향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거기까지인 운명인 걸 어찌 알겠는가?
큰누나처럼 매사에 걱정이 많은 사람이야 정기적으로 몸을 살펴보고 검사받고 체크한다지만 걱정 없이 하루를 보내는 사람에겐 운명도 예고 없이 찾아온다. 다니던 어린이집에 선생님이 코로나 확진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추후 아내에게 물어보니 2~3세 반 아이가 5~6명이 다니고 있었고, 4~5세 반 아이들은 한 명도 다니고 있지 않은 상태, 6~7세 반에서도 양성 확인된 어린이가 5명가량 나왔다고 한다. 선생님 한 분의 확진을 시작으로 적어도 열 가정이 우리처럼 고립되었다는 소리다.
우리 가정은 아직 감기약은 복용하고 있으나 상태가 많이 호전된 상태다. 하나의 걱정이 해결되면 또 다른 걱정이 예고 없이 다가온다. 누군가는 이러한 굴곡의 패턴을 파도라 부른다. 크고 작은 파도를 넘나들며 항해하는 운명을 표현한 방식이다. 커다랗고 안전해 보이는 크루즈를 타고 여정을 떠나는 이들에게 파도는 사소한 울렁임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구명보트에 맹수와 함께 항해하고 있다. 당장의 파도와 추후의 파도를 신경 쓸 겨를조차 없는 생존의 삶이 펼쳐지는 오늘이다. 누나가 부디 수술이 잘 끝나 아름다운 인생의 항해를 차분히 마무리하길 바란다. 아직 난파의 느낌은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