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파도

by 이백지

열네 시간 만에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은 이미 한 챕터가 지나가 있었다. 빠르게는 반나절만에 아이들은 훌쩍 성장해 버린다. 오늘의 콘셉트는 아픔과 실수의 간증이다. 아빠가 집에 없던 시간만큼 아빠가 보고 싶었다는 자기 고백의 시간이 이어진다.

제1의 아해가 안아달라 하면 옆에서 지켜보던 제2의 아해가 업어 달라 한다. 동시에 안고 업자 업힌 둘째의 손이 목에서 미끄러진다. 바닥에 뒹구는 리액션 동작을 최대한 크게 하여 자신의 초라함을 어필한 둘째는 서러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엄마가 잠시 보이지 않자 아빠 무릎에 앉아 손 끝으로 간장을 찍어 먹는다. 장금이다. 레몬 맛이 나서 레몬이라 생각한 것이온데...


코로나 확진으로 레몬맛을 느끼지 못하다 아이가 휘적휘적 레몬을 찍어 먹다 일으킨 파도에 연어가 닿았다. 마지막 연어가 입에 닿을 무렵 드디어 레몬 맛이 느껴진다. 장금이의 배려 덕이다. 장금이는 아빠 배 위에서 자고 싶어 했는데 엄마가 아빠 배 위에 눕자 아빠가 침대로 침잠해 아빠가 보이지 않아 슬펐다. 이러다 아빠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장금이는 엄마 옆에서 곤히 잠을 청한다. 딥 슬립


어른은 한 챕터가 지나가는데 한참 걸린다. 직장이 바뀌거나 만나고 대화하는 사람들이 바뀌거나 아내가 바뀌는 등 사실 뭐 크게 바뀔만한 것들이 많지는 않다. 주변 환경이 바뀌더라도 크게 바뀌지 않는 사람도 허다하다. 무인 자율주행 택시가 시범 사업으로 테스트 중에 있고 향후 자율주행 버스의 도입도 추진된다고 한다. 먼 미래처럼 여겨지던 내일은 알파고와 테슬라를 필두로 바뀔 생각이 없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플랫폼 노동자로 컨베이어 벨트의 한 칸을 채우거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의 역할도 선택지가 제한적이다. 집을 지키는 짖음을 택하거나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거나... 강아지 역시 새끼 때의 챕터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단 몇 개월 만에 성견의 크기로 자라 평생을 살아간다. 새끼 때는 그렇게 귀엽던 녀석이 이제는 사람만큼 먹고 싼다. 미래엔 강아지의 행동 단위를 딥하게 러닝 해 인간에게 자기감정을 실시간으로 설명해주는 글라스가 나오지 않을까?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도달하지 못할 지점은 아닐 게다.


그 전에 빵빵한 빵댕이의 구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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