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생과 사의 경계
아끼던 자동차가 무서워지는 순간
색연필은 걸렸지만 무사히 잘 넘어갔다. 더 큰 이슈가 있어서 묻혔달까. 아내로부터 어린이집 하원하는 길에 유니가 차에 치일 뻔했다는 메신저 메시지가 왔다.
슈발
나 역시 어릴 적 트럭에 치인 경험이 있다. 아빠가 공을 던져주셨고 공을 주으러 뛰어나가다가 골목길을 지나는 트럭에 부딪혔다. 사실 나에겐 그때의 기억이 정확히 삭제된 상태이다. 이후에도 죽음에 가까웠던 순간은 두 번 더 있었다.
내가 어릴 적에는 한강의 하수처리 시설이 개방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 시설을 역방향으로 걸어 들어갈 경우 각종 오폐수로 인해 사람을 구해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둠이 무서워 더 이상의 진입을 망설였던 찰나 첨벙 물소리가 났고 다른 형들이 손을 잡으라고 소리쳤지만 거기까지였다. 어둠과 죽음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후 초등학교에 입학해(당시에는 국민학교로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 등교했다.) 동네 인근 놀이터에서 놀다가 철제로 된 호박마차에 후두부를 강하게 얻어맞아 쇼크로 의식을 잃었다.
그 상황에 이대로 여기 있다간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담을 넘어(천주교 내 놀이터로 사방이 막혀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쓰러졌다. 다행히 지나던 동네 주민이 내가 쌀집 아들인 걸 알았는지 집에다 알렸고 이웃 주민의 빠른 대처 덕에 현재는 이란성쌍둥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그 게 매력이자 불안 요소이다.
삶이란 건 꽤나 억척스러운 질김이 있는 힘이기도 하지만 때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한없이 나약하고 허망한 순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죽음이라는 그림자 앞에서는 강인한 생명력도 한없이 약해 보일 따름이다.
오니는 겁이 많아서 다행이다. 내가 하수처리 시설에서 생을 마감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어둠의 공포 때문이었다. 가장 용감했던 동네 형은 그날 이후 우리와 더 이상 놀 수 없게 됐다.
부모가 신에 의지하는 순간은 아이가 혹시라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때 무사히 살아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순간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래서 심하게 다그치고 혼내는 내 아내를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 자리를 빌려 골목에서 방어운전을 하신 운전자 분에게도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
전쟁이 아님에도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공포로 떨고 있는 지금 하루속히 모든 이들이 죽음이 아닌 생명과 생활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