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가 짖는다. 출근하는 길에 주유소에 들러 주유구를 열었는데 집에 지갑을 두고 나왔다. 강아지는 목청이 크다. 아들이 깼다. 지갑만 가지고 나오기 미안해 초코파이 두 개를 가지고 들어갔다. 어제 거래처 한의원 원장님께 받은 간식이다. 차에 두었다가 먹어야지 생각했는데 원장님 말대로 아이들에게 양보하게 됐다. 지난여름 대비 살이 5kg은 빠진 거 같다며 공진단 세 알과 초코파이 두 개를 챙겨주셨다. 공진단이랑 초코파이를 같이 먹어도 되냐는 질문에 초코파이는 아이들에게 양보하라 신다. "저부터 먹고살려고요"
그렇지 않아도 집에 있던 빵을 점심 대용으로 챙겨 왔었다. 오전 9시 전화벨이 울린다. 회의 시간이라 안 받았다. 아이들 먹일 빵이 안 보인다고 어디 뒀는지 못 봤냐고 아내가 물었다.
그것은 내 뱃속으로 직진하였다. 점심 밥대신 빵으로 끼니를 해결해서인지 하루 사이 700g이 빠졌다. 40kg대인 사람의 체중 감소는 생명 자체의 위험 신호다. 지난달 11일 쿠팡 동탄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50대 노동자 역시 평소 48kg이던 체중이 6개월 사이 43kg까지 빠졌다고 한다. 뇌출혈로 쓰러진 뒤 숨진 이 노동자는 업무 강도가 높은 날엔 하루 3만 5 천보 이상을 걸었다. 지난해 지하철 역 두 정거장을 걷고 양재천을 산책한 날 하루 1만 8 천보 가량을 걸었다. 그 두 배를 걸어다닌 셈이다. 다행히 난 아직 60kg 중반대로 6개월 사이 3kg가량이 빠졌다. 부업을 시작한 시기와 겹친다.
'오늘만 빡세게 일하고 내일은 오지 말자'
물류센터에 아르바이트하러 온 친구들이 대표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이다. 삶이 힘겨울수록 내일은 없다. 힘든 시기를 지나온 자신을 뿌듯하게 여기는 무용담도 들어줄 대상이 있어야 무용담이지 후임이나 일할 인력이 없이는 그저 혼잣말에 지나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대한민국은 더 살기 힘들어졌다. 12시간 근무를 10일 이상 지속하니 잠이 늘었다. 새벽에 깨도 다리의 부기가 빠지지 않는다. 12일째 12시간씩 일을 하고 조금 일찍 퇴근했다. 그래 봐야 10시간 30분 근무한 셈이다. 다시 새벽에 깨 한가롭게 쉴 체력이 생겼다.
월 28일 근무로 격주 일요일마다 풀타임 근무한 20대 마을버스 기사의 자살 소식이 들려온다. 오전 5시 20분부터 밤 11시까지 근무가 풀타임이다. 사람이 소화할 만큼의 업무 강도는 아닌 듯하다. 자율주행 버스면 모를까. 이 정도 업무 강도가 지속된다면 어느 누가 들어와 일을 배우려 하겠는가.
사람이 공장 부품처럼 전락하는 사회에 내일이 어디 있겠는가? 당장 나부터 먹고살아야지. 배우자나 아이들 먹여 살리는 건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른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업체에서 일하던 19세 소년을 기억하는가? 한주호 준위는 본인이 다닌 수도공고 앞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모두 타인의 안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들이다. 희생을 강요하는 직장과 사회에 더 이상 출산은 없다. 이 건 경쟁사회에 대한 유권자의 무효표 투표인 셈이다. 내일이 어찌 되든 내 알바 아니라는 태도 말이다.